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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작가의 "100세 시대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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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사업은 이젠 그만

글 박창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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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욕심은 다릅니다. 노년에 이걸 혼돈하면 큰 화를 자처하게 됩니다.”

KBS라디오 시니어 방송 프로그램에 장기간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이다. 

쓰기 강사로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을 만나고, 경영 전문지 프리랜서 기자로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저절로 각인된 문장이었다. 

“박 기자,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2년 전 여름이었다. 몇 년간 연락이 잠잠했던 C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치 오랜 친구 대하듯이 밝은 톤으로 말하는 목소리가 예전 그대로인 걸 보니 반갑기도 하고 건강한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편했다. 80대 중반이니 가족들의 부고 메시지나 입원 소식이 와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변함없는 그 목소리가 귀에 와닿았으니 말이다.

“네 사장님. 자주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여전히 건강하시죠?” 

“그럼. 나야 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아직 청담동에 사시는 건가요?”  “아니 사는 건 ○○○이고. 그나저나 얼굴이나 봐. 나 제기동역 ○○○에 사무실이 있거든. 언제 시간 낼 수 있어?”

얼굴을 본지도 오래된 데다 어르신이 먼저 연락했으니 일단 한 번은 뵈어야겠다는 생각에 

며칠 후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외모는 예전이나 달라진 게 없었다. 정장 차림의 깔끔한 노신사 모습 그대로였다. 반가움이 앞서긴 했지만 몇 마디 오가고서야 내게 연락한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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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년 시절부터 온갖 사업을 두루두루 거쳐 온 그는 50대 초반 정수기 판매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전 재산을 다 날리고 친척 집 지하 방 한 칸에 얹혀살았다. 지인이 피자집을 개점했는데 점포 관리를 맡길 사람이 마땅하지 않아 그에게 일자리가 주어졌고, 여러 사업을 통해 길러진 남다른 감각을 소유했었다. 

몇 년 후 국산 피자 브랜드를 만들어 체인사업이 확대일로였던 시기다. 

잡지의 소자본 창업 담당 기자였던 나는 그가 이끄는 브랜드가 토종 피자 브랜드인 데다 로열티나 인테리어 비용을 별도로 챙기지 않고 오로지 피자 굽는 오븐기 판매와 기술 전수만을 내세운 터라서 그 참신함에 이끌려 취재를 했다. 

특종은 쉽지 않다. 삼십여 년 동안 한 달에 대 여섯 편 씩 원고를 줄기차게 써 왔지만 다른 매체 

의 기자들이 취재원 연락처를 문의해 오거나 독자의 반응이 핫했던 일은 잦아야 일 년에 한 두번이나 있을까? 아무리 좋은 기사라도 독자가 관심을 얻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정의와 진실을 앞세워 신선한 뉴스를 전하겠다는 노력과 의도는 물거품이 되기 일쑤다. 

인연이 되려고 했던가?  몇 개월 후 C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별도의 광고를 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잡지 기사만 읽고 체인점을 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 이들이 여럿 있었고, 가맹점 계약으로 이어진 이들도 몇 된단다. 밥 한 끼는 꼭 사야만 당신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간청하듯 하니 어쩔 수 없이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 후로 취재와는 상관없이 안부를 먼저 전해오곤 했고 몇 년 지나서 70세를 앞두고 자서전 출간을 의뢰해 와서 교정과 편집 진행을 도와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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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그는 나이가 들었으니 체인사업은 아들에게 물려주고 당시 거주하던 청담동 연립주택 재건축이 마무리되어 고급빌라로 변신한 새집에 살게 되었는데 이제는 여행이나 다니면서 노년을 보내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주민들의 추천으로 추진위원장 역할을 한 결과가 만족스럽게 매듭을 지어서 더없이 뿌듯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여곡절 많은 시절을 보냈으니 남은 삶은 다행히 그 보상을 받듯이 평온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비싼 동네에서 68평 고급빌라에 거주한다는 것이 살짝 부럽기도 했다.

다시 또 몇 년이 흘렀다. 서울 시내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일부 구역의 재개발추진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으니 시내 나오면 차 한잔하러 꼭 들리란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먼저 연락을 취해온 어른의 입장을 생각해서 인사차 잠시 사무실에 들려 차 한잔을 하고 왔다. 다만 뭔가 걱정이 앞섰다. 다세대 주택 한두 동 재건축도 아니고 몇천 평이 되는 지역 재개발이 그리 쉬울까하는 염려와 함께 잘못되면 대형사고를 치는 일이니 차라리 그냥 쉬면서 여생을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아이고, 재개발이라는 게 그거 쉽지 않더라고. 그나마 마누라 앞으로 돼 있는 아파트만 건지고 몇십억 통째로 날렸어. 그것 때문에 마누라가 병까지 나서 한동안 맘고생을 좀 했어. 

사는 게 다 그렇네”

젊은 시절 사업으로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던 남다른 경력 때문인지 큰일을 겪은 당사자 치고는 참 무덤덤해 보였다. 그러면서 1년 전부터는 건강용품 사업을 시작 했는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사용해본 결과 나름 기가 막힐 만큼 효과가 좋다는 제품 설명을 늘어놓았다. 제품 홍보를 도와달라는 얘기다. 효능은 알 수 없지만, 아이템이나 사업 플랜 자체가 주먹구구식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80이 넘은 나이에 뭔 돈이 또 그리 아쉬워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지 늘 보편적인 논리를 내세우는 내 입장에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장님 이젠 정말 일 벌이지 마시고 쉬시는 게 남은 인생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나 잘하는  일 아닐까요’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시간 나는 대로 다시 또 뵙겠다는 어정쩡한 인사만 남기고 사무실을 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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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요양병원에 누워서 80대 90대 인생을 보내는 노인들에 비하면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어떤 일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멋진 노년 인생이 아니던가. 다만 더 채우기 위한 욕심이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리라.

C사장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소설가 한기영이 76세에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라는 산문집 

을 펴내면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노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다.”  라고. 노년에 포기하는 것은 욕망의 크기를 대폭 줄이는 것이되 대신 자유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노년기의 삶은 몸도 마음도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C사장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은 아마도 돈 버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박창수 작가는

충북 청원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출판잡지)을 전공했고 신구대학교, 인하대학교, 중앙저널아카데미에서 출판잡지 관련 강의를 했다. 30년 여년 간 잡지, 신문, 사보 기획 편집인으로 취재기자이자 여행, 시니어 인생2막, 처세서 작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유쾌하게 인생을 즐기는 53가지》, 《살아있는 동안에 꼭 한번은 해야 할 것들》, 《여행 사람 사람을 배우다》, 《잇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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