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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담장 밖 교육 1부 :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남자의 인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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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담장 밖 교육


아버지이 이름으로 한남자의 인생으로

푸른나무재단 김종기 이사장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린 아들과, 그 이유를 애써 외면하려는 세상과 그런데도 태연하게 흘러버리는 시간들 속에서 아버지는 결심한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학교 폭력이라는 괴물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기획 시리즈 담장 밖 교육 -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남자의 인생으로" 가

1,2부로 나누어서 연재 됩니다. 


글 윤용인 기자  사진 손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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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16세 소년이 아파트에서 제 몸을 던졌다. 차 지붕 위에 떨어졌으나 소년은 피를 흘리며 계단을 올라가 다시 뛰어내렸다. 소년의 삶이 거기서 멈췄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중국 출장지에서 들었다. 마흔여덟,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며 정상만 보고 달리던 아버지의 시계도 거기서 멈췄다.  

속초 바다에 아들의 뼈를 뿌렸다. 슬픔에 빠져있는 아내와 딸을 추슬렀다. 당연히,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추적했다. ‘학교 폭력’이라는 생소한 단어와 마주했다. 아버지 뿐 아니라 당시에 그 단어는 누구에게나 신조어처럼 낯설었다. 아니, 금기어였을 것이다. 실재했으나 저마다 쉬쉬했던 말. 일본의 이지매 문화를 방송을 통해 접하면서도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애써 고개를 돌리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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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대현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폭력에 시달렸고, 그것이 아들 죽음의 직접적인 이유였다. 착하고 순하고 또래 집단에서 인기도 많았던 아이, 그것은 비단 고슴도치 부모 눈 속의 주관적 평가가 아니었다. 친구들이, 선생님이, 이웃이 모두 대현을 그렇게 기억했다. 무너지는 가슴으로 가해 학생을 만나고, 고개를 숙이고 덜덜 떨던 그들의 모습을 무감하게 지켜보며, 반성문을 받았다. 그래 봐야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 괴로움은 자기 비난으로 번져갔다. 내가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내가 죄인이다. 자식을 외롭게 한 죄인,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죄인. 세상은 대현의 죽음과 그 억울함을 포용하기에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신성한 학교에서 학교 폭력이라니. 스승과 학교의 권위를 절대시하는 유교적 국가의 흔적은 학교와 관련 기관에 더 강력히 남아있었고, 그 안의 사람들은 폭력을 인정하는 순간 교육과 학교의 권위에 큰 금이 간다고 믿는 듯했다. 

자라면서 친구들끼리 싸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폭력에의 관대함은, 자신들이 그렇게 맞으면서 커왔던 90년대 어른들의 보편적 정서였고 대현이의 죽음을 문제적 시선이 아닌 기이한 시선으로 바라 보는 배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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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린 아들과, 그 이유를 애써 외면하려는 세상과 그런데도 태연하게 흘러버리는 시간들 속에서 아버지는 홀로 동분서주했다. 경찰서를 뛰어다니고 학교와 기관을 찾아갔다. 그때마다 만나는 거대한 벽 앞에서 아버지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학교 폭력은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만의 문제가 아닌, 학교, 가정, 사회가 모두 얽힌 구조적인 병폐라는 사실을. 또 다른 대현이가 어디에선가 유서를 쓰고 계단을 오르고 창문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결심한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학교 폭력이라는 괴물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아버지, 학교 폭력과의 전쟁을 시작하다


아들의 죽음 두 달 후, 아버지 김종기 이사장은 기자 회견을 열고 대현이의 죽음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린다. 신문과 방송이 ‘학교 폭력’이라는 용어를 대서특필했고, 여론이 동요했다. 국회가 위원회를 열고 김영삼 대통령이 학교폭력근절을 지시한다. 대현이의 죽음은 해방 이후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입에서 청소년 문제가 언급된 최초의 사건이 된다. 김종기 이사장은 이러한 분위기가 지나가는 바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어야 대현이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시민의 모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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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통해 소식을 듣고, 학교 폭력을 접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왔고 모임의 중심이 된다. 오늘의 <푸른나무재단>의 뿌리가 된 <청예단(청소년 폭력 예방 재단)>의 전신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회사 근처에 작은 재단 사무실을 얻고 학교 폭력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김종기 씨는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아들의 죽음에 머물러 있기에는 일터에서 그의 역할이 너무 컸다. 삼성의 주요보직을 거쳐 신원 그룹의 기획실장이 되고, 차기 사장으로 유력한 상태였다. 다만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듯, 아버지의 마음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학교 폭력과 싸우는 일과 회사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결국 두 개를 모두 놓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현이를 떠올렸다. 대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 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냈다. 대기업의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며 출세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음에 두지 않았던 시민단체의 이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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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시작


“부모가 잘못하니 아이가 자살하지!”  공무로 찾아간 김종기 이사장에게 교육 공무원이 들으라는 듯 혼잣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학원폭력 근절 일을 하던 때였다. 분노가 치밀었 

지만, 당시 폭력피해자인 아이의 죽음을 바라보는 세상 한 편의 비틀어진 시선 중 하나임을 김종기 이사장도 알고 있었다.  아비는 절박했고 현실은 무관심했고 정부와 공무원은 느렸다. 대기업에서 안 되는 것도 되게 하고 불가능은 없다는 근성을 몸으로 익힌 사람에게, 이러한 환경은 포기가 아닌 극복의 대상이었다. 참척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부모는 세상의 쏟아지는 말 이전에 이미 스스로 죄인이 된다. 세월호에서 꽃다운 새끼들을 잃은 부모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 

은,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앞섰고, 미안하다는 말이 보고 싶다는 말을 덮었다. 부모가 잘못해서 배가 뒤집힌 것도 아니고, 부모들이 못나서 아이들이 그런 비극을 당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부모들은 한결같이 미안하다며 울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통곡했다. 그런 것이 부모라는 존재가 품는 인지상정의 마음이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은, 사람인 이상 매한가지다. 내가 죄인이고,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 그 미안함이 어쩌면 김종기 씨를 청소년 폭력과 싸우는 투사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26년 동안 비포장의 도로를 뚜벅뚜벅 걸어왔던 그 힘,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물었다. 또 다른 대현이가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틴 것이었냐는 질문에 김종기 이사장은 그런 것은 모두 언론이 만들어낸 포장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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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초적이었어요. 근본적인 것은, 잘못한 것에 대한 죗값을 받겠다는 거였어요. 대현아, 아빠가 너를 고통 속에 보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무엇보다 제가 살 수가 없었어요. 아들이 그렇게 죽고 나니 밥을 먹을 수도, 걸을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어요. 무엇이든 해야 했어요.” 

그는 무엇이든 했다. 아는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 힘이 돼달라고 청했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전략을 다듬고 전술을 만들었다. 학교 폭력이라는 거대한 실체와 싸우려면 전략은 세밀해야 하고 구체적이며 실천 가능한 것들이어야 했다. 그런 것들의 토대는 당연히 돈이었다. 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것이 재단 초기 김 이사장의 목표였고 전술 수립의 꼭짓점이었다. 시작했으면 이겨야 한다, 기업에서 새겨놓은 승부의 DNA가 이곳에서도 맥동질했다. 그가 지금까지 학교 폭력과 관련해 일군 성과는 대한민국 학원문화에 있어 하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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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이 만들어지다. 시스템을 만들다" 

 2부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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