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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공존을 꿈꾸는 플라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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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공존을 꿈꾸는 플라스틱

어쩌다 플라스틱이 자신의 앞날을 고민하는 처지가 됐을까? 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지난 세기까지 플라스틱은 기적의 소재로 불렸다. 인류의 역사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면 지금은 누가 뭐래도 플라스틱 시대다. 쉽게 만들어 편리하게 사용 할 수 있는 이 신통방통한 소재는 우리를 자연 세계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해주 었다. 그런데 인류에게 편리함을 선물했던 플라스틱이 이제 죄책감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됐다. 지구를 아프게 하는 주범으로 지목됐고, 급기야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리하여 플라스틱은 인간과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글 임숙경 기자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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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빨대를 집어 들면서 코에 빨대가 꽂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배달음식 한번 시켜서 먹고 나면 산더미 같은 플라스틱의 양에 죄책감이 들면서도 한편에서는 플라스틱을 줄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플라스틱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시작한 지금. 그렇다면 과연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

한번 상상이나 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목을 축이려고 하는 순간부터 위기에 봉착한다. 플라스틱 정수기나 물병을 피했다면 일단은 통과(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화장실을 가고 싶지만, 헐! 변기 뚜껑이 플라스틱이라 포기. 가까스로 생리현상을 참고 소파에 몸을 기댔지만, TV를 켤 수도, 노트북 전원을 누를 수도 없다. 심심하니 스마트폰이나? 어림없는 소리. 당신의 스마트폰은 케이스 자체가 플라스틱이다.
그렇다. 우리는 플라스틱병에 담긴 물을 마시고, 플라스틱 냉장고 에서 음식을 꺼내 먹으며, 플라스틱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플라스틱 노트북과 플라스틱 마우스로 밥벌이를 한다.

<플라스틱 사회》의 저자 수전 프라인켈(Susan Freinkel)은 “플라스틱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의존과 불신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 환경을 헤치는 범죄자쯤으로 여긴다. 그러니 이쯤 해서 우리는 플라스틱 퇴출을 포기하고, 플라스틱과 사이좋게 살아갈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안간힘
바이오플라스틱
왜 이런 사달이 난 걸까? 이유는 한 가지로 요약된다. 플라스틱이 썩지 않아서다. 플라스틱은 1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19세기 말부터 플라스틱이 생산됐으니 그동안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대부분은 썩지 않은 채 땅속 어딘가에 묻혀 있거나 바다를 떠돌고 있다. 이렇게 살아남은 플라스틱은 토양, 대기, 해양의 오염을 초래한다. 소각할 때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대기를 오염시키고, 물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은 해양생물을 위협하며, 작게 쪼개진 미세플라스틱은 어류의 몸을 거쳐 인류의 몸속으로 들어와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소비에서 플라스틱을 밀어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기업 쪽이다.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대 포장을 줄이 자는 세계적인 소비자 운동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일찌감치 유통기업 테스코가 2025년까지 100% 재활용되거나 생분해되는 재질의 봉지를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프랑스 유통 대기업 까르푸도 상품 포장재가 100% 재활용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등의 대기업이 제품과 포장재를 소형화하고,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자원순환 사업을 펼치는 등 플라스틱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100% 재생 플라스틱 용기를 활용해 2019년 기준 159톤의 플라스틱을 감량하는 성과를 올렸고, 동원F&B도 페트병 무게를 13% 가까이 줄였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기술이다. 연구의 방향은 매립 후 완전히 생분해되는 일명 ‘썩는 플라스틱’ 소재와 석유 대신 식물 등에서 추출한 원료를 포함한 바이오매스 플라스틱 개발에 집중됐다. 결국, 자연에서 얻어 자연으로 돌려보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 소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소재 단가가 저렴해야 하고, 플라스틱만큼 양산성 이 좋아야 하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확장성까지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를 만족할 만한 소재로는 PLA(Poly Lactic Acid)가 가장 각광을 받고 있다. 일반 플라스틱과 비닐은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제조한 탄화수소 합성물을 원료로 제조되지만, 바이오플라스틱은 사탕수수, 감자전분, 우유, 밀, 생고무, 곡물이나 나무껍질 등에서 추출한 바이오 폴리머를 이용 해 석유화학 플라스틱과 유사하게 견고하고 조형이 쉬운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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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PLA가 현재로서는 식품 용기 및 포장재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생분해성 옥수수 일회용품은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반년이면 자연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생분해된다. 일반 플라스틱보다 기계적 강도가 훌륭하지는 않지만, 가수 분해 산물이 젖산이라서 인체에 독성이 없고 가공성이 우수하다. 각종 포장 용기와 주방용기, 유아용 식기 소재로 사용되는 옥수수 PLA는 3D프린터의 재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옥수수 PLA는 열에 약하고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옥수수를 대신해 사탕수수가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블록 완구 기업 레고는 2030년까지 제품과 포장재를 친환경 소재로 전면 교체하기로 한 데 이어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는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PLA가 친환경 플라스틱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00% 천연 PLA만으로는 유연성과 내구성을 가진  제품을 만들기가 어려워 첨가제 등의 화학 소재를 사용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이것이 폐기 과정에서 독성물질을 만들어낸다. 결국, 유해한 첨가제 없이도 플라스틱의 물성을 구현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중요한 것은 말로만 친환경이 아닌 ‘진짜’ 친환경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것이다. 친환경 플라스틱 개발 기업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소비자들의 시선이 더 까다롭고 꼼꼼해졌다는 것을 기억해 둬야 한다.

줄일 수 없다면 다시 쓰기
업사이클링
가격과 양산성, 성능 면에서 바이오플라스틱의 상용화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당장은 플라스틱을 버리지 않는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의 썩지 않는 성질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살려 플라스틱을 우리 곁에 오래 두면 되는 일이다. 그 한 방편으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열을 가하면 다시 성형할 수 있는 ‘열가소성’ 플라스틱 소재의 성질을 활용한 것이다.
폐플라스틱 업사이클링이 가장 활발한 곳은 패션 분야다. 이것은 페트병과 폴리에스터 섬유가 같은 원료로 만들어졌다는 데서 기인한다. 수거된 페트병에서 라벨과 뚜껑을 분리하고 세척한 다음 잘게 플레이크 형태로 조각을 내서 녹이면 페트병의 원료였던 폴리머 상태로 되돌릴 수 있 다.

이 폴리머는 페트병과 폴리에스터 의류, 침 구용 솜, 건축용 부직포 내장재 등 수많은 제품 의 소재가 된다. 실제 지난 5월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옷을 직접입고 탈플라스틱 캠페인 ‘고고 챌린지’에 동참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전문기업 테라사이클은 오랄비와 함께 칫솔을 업사이클링한 카드지갑을 크라우드펀딩에 공개했으며, 가구 브랜드인 에코버디는 아이들 이 버린 장난감으로 어린이 맞춤 가구를 제작해 인기를 끌고 있다.

기업의 이런 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사례는 국내외 를 막론 확산되고 있다.
의류나 생활 소재를 넘어 도로공사, 건축자재로 폐플라스틱 을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면 공사비를 줄일 수 있고, 도로의 내구성도 높일 수 있어 일석이조다. 아스팔트 도로포장 공사에 폐타이어나 유리 등 이 재사용되지만, 혼합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발생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반면 플라스틱 도로는 재활용이 가능하고, 도로 수명이 다하면 그것을 다시 재활용할 수 있어 훨씬 친환경적이다. 더욱이 플라스틱은 썩지 않기 때문에 일반도로와 비교해 수명이 최대 3배에 이른다.
실제로 영국 회사 맥리버가 폐플라스틱이 섞인 아스팔트를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에 시공했는데, 이전까지는 6개 월마다 아스팔트를 새로 깔아야 했지만 새로운 소재로 도로를 시공한 후 지금도 멀쩡하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한국 건설기술연구원(이하 연구원)이 폐플라스틱을 이용한 도로 포장재 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썩는 플라스틱이든 폐플라스틱 업사이클링이든 사회적인 인식과 기술적인 뒷받침이 동시에 필요한 분야다. 그런 면에서 이 분야의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2018년 재활용 제품 수거 대란으로 큰 혼선이 빚어지면서 환경과 업사이클링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졌고, 동 시에 부족한 기술 때문에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이 일반 제품에 비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기술이 발전 하면서 생분해 플라스틱의 품질이 일반 제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제조원가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 제품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 한 노력만이 남았다. 언제까지 플라스틱 탓만 할 것인가? 편리함을 위해 인류가 플라스틱을 창조해냈으니 공존을 위한 수고의 책임도 인간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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