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영원한 왕 유동근 - 2부 " 유동근의 변신, 나 아닌 다른 연기자를 위하여"

작성자 정보

  • PEOPLE365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유동근의 변신, 나 아닌 다른 연기자를 위하여" 


41a1a9fac0caabe2a56ca01c0165fce2_1682307433_2617.jpg
 

유동근의 변신, 나 아닌 다른 연기자를 위하여


최근에 그는 연기자보다는 행정가의 모습으로 변신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기자, 가수, 성우, 코미디언, 연극배우, 실연자협회 등 연예계 6개 단체가 모인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의 이사장으로, 한국대중문화예술원의 원장으로 연예인의 복지와 인성 교육, 신인 발굴에 힘쓰고 있다.  

이 역할 이전, 그는 연기자 협회장이었다. 흔한 말로, 톱스타로서 잘나가는 배우가 왜 다른 연기자들의 권익과 어려움을 해결하는 협회의 장을 맡으려 했던 것일까?


“이순재 선배의 권유도 있었고 친하게 지내던 단역 선배도 저에게 협회장을 맡아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어떤 이유였는지, 하루를 고민하다 제가 하겠다고 전화했습니다. 유명한 사람보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그 당연한 연기자 세계의 현실을 떠올렸을 때, 그렇다면 이건 해볼 만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연기자 협회장을 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깨우쳤습니다. 인기의 허망함도 알게 되었고, 또 선후배 동료 연기자들의 힘든 현실도 알게 되었죠. 시청자들의 문화적 눈높이 수준은 점점 높아지는데 우리 현업의 종사자들은 뒤를 돌아볼 여

유도 없었고 지금 자신들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매니저들은 자기들이 모이는 방이 없어 남자 분장실 한쪽에 다 들어가 있었고요. 배우들은 쪽대본 등에 대해서도 어떤 문제를 제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655c1fc7720c0f27aa528292ae0beb76_1682064806_3503.jpg
 

사극은 일주일에 이틀을 녹화했다. 금요일 팀과 토요일 팀으로 나뉘었고 세트별로 또 팀이 갈라졌다. 유동근 씨는 이틀 내내 녹화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이쪽 팀과 저쪽 팀의 상황을 다 볼 수가 있었다. 같은 연기자라고 해도 이쪽 팀이 약이 올라있고, 저쪽 팀이 서운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런 것을 촘촘히 살피고 남들의 고충을 내 것처럼 보듬었다. 피디와 연기자의 입장 차이를 좁혀가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갑자기 죽어야 했던 배우가, 고증서를 들고 와서 이 사람의 죽음의 시기는 지금이 아니라고 따질 때, 배우들도 드라마 제작환경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저는 피디들과 대척점에 서야 한다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들도 연약한 사람들이니까요. 

오히려 피디들이 가진 그들의 어려움을 연기자들이 이해할 측면도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연 

출자가 현장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고 뭐라 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현장에서 수백명을 

핸들링해야 하고 작품의 성공 여부에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기자들에게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해서도 제가 설명을 해줬고요. 저는 그런 것들을 연기자들이 두루 이해할 수 있게 하도록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협회장을 맡고 나서 유동근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일거리 없는 선배들이 사정을 이야기하면 방송국 국장에게 달려가 한 회만 이라도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통사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협회에 살림할 밑천이 없다는 것에 대해, 우선 해야 할 것은 재원확보라는 것을 절감한다. ‘연기자 협회’는 회원들이 회비를 내서 운영되던 친목 모임의 성격이고 지금의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는 국가 예산을 받아 살림하는 법인이다. 연기자 협회를 통해 얻는 경험과 문제의식을 통해 지금의 연합회가 태어났다.  


“연기자들이 행정에 대해 미흡합니다. 협회에 돈이 없으니 유능한 행정전문가를 모셔올 수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가수, 코미디, 연극, 성우 등의 단체장을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돼야 국가 예산을 받아서 공익적인 일도 하고 협회원의 권익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 설득 끝에 만들어진 것이 예술인 총연합회(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입니다. 국가에서 지원을 받는 첫 번째 대중문화예술인의 단체이고요. 회원이 2만 5천 명 정도 됩니다.” 


‘한국대중문화예술원’은 이들 ‘예술인 총연합회’가 함께 모여, K-엔터테인먼트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육성하는 일을 한다. 한류 양성소인 셈이다. 가수 협회가 트로트를 교육 하고 코미디 협회는 코미디 교육을 한다. 성우 협회가 성우 교육을 연기자 협회가 연기를 가르친다. 유동근 원장이 예술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인성 교육이다. 청학동도 아닌데 왜 뜬금없이 인성 교육인가?


“저는 1980년 TBC 마지막 기수로 방송국에 들어갔습니다. 선배들은 심부름을 시켰지만, 마음에 드는 후배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그걸 해결해주기도 했습니다. 선배들에게 좋은 후배가 되기 위해 저희는 각자 인성을 배우고 그걸 다듬어나갔죠. 학문적으로 나누질 않아서 그렇지 분명히 그러한 것들은 아주 좋은 인성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선배들 심부름을 많이 하니까 어떤 선배하고 연기를 붙어도 떨림이 없었습니다. 내가 실수를 해도 격려를 해주고, 그런 속에서 저희는 배우로서 다듬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배우로서의 인성은 일종의 배우가 갖춰야 할 자질 혹은 품성과 동의어로 들린다. 인간 됨됨이를 갖추는 예절인으로서의 인성이기보다는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인성의 필요성을 그는 크게 강조한다.


“지금은 다 개인 분장실을 가지고 있죠. 선배들과 관계도 아주 제한적으로 머물다 보니 젊은 배우들의 고민은 드러날 기회가 없습니다. 또 자기 고민이 드러나게 되면 그것을 아주 인격적인 수치심으로 여깁니다. 배우는 자기 모멸감을 이기는 훈련이 돼 있어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카메라 한 대가 나를 찍는 것 같지만 스태프 포함 백 개의 눈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어요. 평소에 뱃심을 키우지 않으면 현장의 변화무쌍한 상황을 대처하기 힘듭니다. 제가 말하는 연기자의 인성은 깨지면서 자기 스스로 단단해져 가는 내면의 힘을 말하는 것이지요.”   


655c1fc7720c0f27aa528292ae0beb76_1682064878_3216.jpg
 

예술원 원장으로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에 그는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재능을 다 돌려 주려는 마음이 때때로 엄격함으로 나오기도 한다. 예술 교육원에서는 학생이 3회 지각을 하면 자동 탈퇴이다. 이유를 물어보는 것도 없다. 촬영 현장에서 한 사람의 지각이 전체 연기자와 스태프 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그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만드는 작품에 대해서도 그 시작점인 기획에서부터 차별성을 강조한다. 기존에 했던 드라마 방식으로 기획을 잡아서는 변화되는 방송 환경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회의 흐름과 함께 하는 사회적 기획을 잡아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작품을 준비해오라고 하면 기존 것을 그대로 답습해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오는 친구가 있고 어떤 학생은 자기가 직접 새벽 배송을 하며 그 경험을 그대로 발췌해오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답습된 시나리오는 버립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만 살리고, 그것을 학생들이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이해하게 합니다.”


655c1fc7720c0f27aa528292ae0beb76_1682064945_2694.jpg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프로야구의 전설 최동원이 떠올랐다. 프로야구 노조 성격이었던 선 

수협을 결성하고 1군이 아닌 2군 이하의 선수들에게 더 따뜻한 애정으로 선수들을 지켰던 이가 최동원이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무쇠 팔로 최동원을 기리면서도, 그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동료를 위해 헌신한 최동원의 품성을 존경했다. 다른 연기자의 더 좋은 무대를 고민하고, 후학들의 미래에 더 큰 에너지를 쏟는 유동근 씨의 모습이 최동원 선수의 삶을 얼핏 떠올리게 한다고 하자 유동근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은 제 만족입니다. 저는 그런 숭고하고 이타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연기자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정작 자기 삶에는 소홀하고 실수가 잦습니다. 연기자들이 더 연기를 잘하고, 코미디언이 더 잘 웃기고, 가수가 더 잘 노래를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그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건강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도 무언가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갖는다는 것이 기쁜 일이고요. 적어도 내가 동료를 위해서 뭔가 나 나름의 족적을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다는 거, 그게 이제 저한테는 매력이 있는 것이죠.”


유동근 씨는 배우로서 마지막 불꽃을 연극을 통해 태우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방송에서는 자기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다 해본 것 같으니 지금도 세 시간 반의 리어왕 공연을 하는 이순재 선배처럼 연극 무대에서 자신의 열정을 태우고 싶다고 했다. 


배우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자기를 꾸미는 것에서 남들을 채워주는 것으로 관심의 영역이 바뀌는 것이라고 유동근 배우를 보며 생각한다. 잡고있는 밧줄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고단함이 아닌, 이미 놓아버린 밧줄에 연연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대배우의 모습은 여전히 멋스럽기도 했다. 

한국의 멜 깁슨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멜로와 사극 모두에서 배우로서의 자기 영역을 단단히 확보한 유동근은 사람들 뇌리에서 “유동근=왕”의 공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 〈왕과 나〉의 율브리너가 영원히 왕과 동의어이듯 말이다.

실제 그는 왕의 무거움을 다 벗어던진 듯했지만, 왕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 위민(爲民)의 역할을 사명으로 하듯이, 그 역시 지금은 다른 배우들과 미래 예술인들을 위한 행정을 하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왕이었던 것이다.


@PEOPLE365 & people365.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자료

PEOPLE365 TV


이세온의 가요산책


코렌코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