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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雪國)으로 떠나는 눈꽃 트레킹- 강원도 선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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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선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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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雪國)으로 떠나는 눈꽃 트레킹

 

눈 오는 날이면 선자령에 가야한다

90년대에 최민수엄정화 주연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라는 한국영화가 있었다. 영화제목을 빗대어 얘기하자면, 눈 오는 날이면 선자령에 가야한다.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선자령은 눈과 바람의 언덕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덕에 유명한 겨울산행지가 됐고 바람이 많이 부는 탓에 정상 인근엔 풍력발전기가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그 이름처럼 신선마저 바쁜 걸음 잠시 쉬어가는 고개 선자령(仙子嶺). 가슴이 꽉 막혀 있다면 이 언덕에 올라 구비구비 펼쳐진 산자락 내려다보며 쉬어 갈 만 하다.

사진 여행작가 이룸

 

대관령 산자락 걷기, 11km, 2시간에 맛보는 장관


구름도 쉬어 간다는 대관령 기슭 선자령의 또 다른 이름은 설국이다. 대관령은 국내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백두대간이 강원도를 영동과 영서로 가르고 있어 영동의 습기 많은 바닷바람과 영서의 대륙 편서풍이 부딪혀서 겨울의 폭설을 만든다. 대관령이 3월 초까지도 적설량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에 걸쳐 있는 선자령의 남쪽으로는 발왕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 황병산이 자리한다.

   

선자령에 오르는 길은 산행이라기보다는 트레킹에 가깝다. 큰 오르내림 없이 편안하게 능선을 탄다. 선자령은 해발 1,157m지만 대관령휴게소가 840m이니 정상과의 표고차는 317m밖에 나지 않는다. 대관령의 맛을 제대로 보는 꽤 긴 능선이지만 산행의 힘듦은 별로 없다

그저 동네 뒷산 수준이다. 산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별로 힘들이지 않는 것에 비해 대관령의 오밀조밀한 속살과 장쾌하게 펼쳐져는 풍경은 장관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시원하다.

 

트레킹 거리는 총 11~12km 정도. 코스는 쉽고 단순하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시작해 전망대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길은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내려올 때는 원점을 회귀해도 되고, 다른 풍경 속에서 걷고 싶다면 재궁골삼거리 방향으로 내려가도 된다. 재궁골삼거리와 풍해조림지를 지나면 양떼목장이 나오고 다시 대관령 휴게소 주차장으로 연결된다. 중간에 점심도시락을 먹고 내려와도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하다.

 

상고대와 눈꽃 보며 겨울 꽃잔치

 

겨울 선자령의 인기는 역시 겨울 눈 덕분이다. 선자령이 태백산이나 설악산처럼 겨울 산행으로 특히 유명해진 이유는 상고대와 눈꽃 때문이다

상고대란 급 냉각된 미세한 물방울이 나무의 측면에 붙어 동결해 순간적으로 생긴 얼음을 말한다. 꽃 같이 피어올라 얼음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눈송이가 겹겹이 붙어 생긴 눈꽃도 온 나무를 치장한다. 꽃이라고는 통 모르던 날카롭던 칩엽수들도 온 몸으로 두루뭉술 눈꽃을 피워 올린다.


엄동설한에 피워 올리는 얼음꽃과 눈꽃의 향연이 봄꽃만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형형색색 하늘거리는 봄꽃이 마음을 보드랍게 애무한다면 눈이 시리게 하얗고 차가운 얼음꽃과 눈꽃은 침잠했던 생의 기운을 단단하게 끌어올린다. 연약해진 마음을 다잡게 한다.

상고대는 바람이 강할수록 크게 성장하고 눈꽃은 폭설이 내릴수록 탐스럽게 피어난다. 코로나19로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요즘, 생활의 차가운 바람이 무시로 나를 할퀴고 생의 무게가 연약한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저 상고대처럼 안으로 단단해지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저 눈꽃처럼 눈부시게 피어나는 꿈을 꾸는 거라고, 그렇게 되뇌어보는 것이다.

       

짧은 다리가 눈 속으로 푹푹 빠진다. 발바닥에서 뽀드득 거리는 눈소리에 취해 5km 가량을 그리 힘들지 않게 걷다보면 어느새 선자령 정상에 닿는다. 자랑스러운 듯 백두대간선자령비석 하나 우뚝 서 있다. 사람들은 정상에서 사진 한 컷 박고는 모두들 다시 우르르 내려간다. 정상 이래봤자 산의 꼭대기라기보다는 긴 능선을 이어가는 한 지점일 뿐이다.

 

사람들은 가장 높이 자리한 한 지점을 정상이라 부른다. 누구에겐 목적지가 되고, 누구는 도달했다 환호한다. 힘겹게 오르고는 다시 내려가는 일, 그것은 어쩌면 모든 산행의 똑같은 스토리다. 산에서나 인생길에서나 절정에서 아래로 내리는 길은 그것이 순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아쉽다. 아쉬운 마음을 화사하게 반짝이는 눈꽃들로 달래본다.

 

산행은 덜어내는 삶을 배우는 시작


내려오는 중간쯤에서 사람들은 간단한 텐트나 비닐막을 치고 점심을 먹거나 쉬어간다. 산에 서 먹는 점심은 잠시나마 야영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입맛이 떨어졌다면 단연 산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메뉴가 뭐든 꿀맛 같은 식사를 보장한다. 컵라면과 사과, 몸을 데워줄 한 모금의 차로 간단하지만 마음만은 거나한 점심을 먹는다. 


1박 2일의 야영 짐을 꾸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선자령은 백패커들의 성지이기 도 하다. 바람이 잦아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설동들이 제법 보인다. 어젯밤에도 이 능선에서는 한겨울 시린 눈 속에서 별 밤에 취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선자령 넘어 오대산까지 갑니다.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거죠” 

텐트와 침낭 등을 어깨에 둘러 맨 야영객의 한마디. 길이 가파르지 않으니 겨울 하룻밤을 보내게 해줄 커다란 배낭을 감당하는 어깨도 견딜 만은 하리라. 한낮에 황홀하게 깔린 눈밭만 큼 한밤에 이 언덕으로 쏟아질 별빛에도 문득 욕심이 난다. 


하지만 백패킹은 트레킹과는 다르다. 욕심이 난다고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라도 자기의 의식주를 등짐으로 짊어지고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 한 딱 그만큼의 짐을 스스로 져야 한다. 차 없이 가는 캠핑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차에 캠핑 장비를 가득 싣고 떠나는 오토캠핑의 ‘뚜벅이’ 버전이다. 


야영지에서 먹고 자고 생활할 의식주의 모든 짐을 배낭 안에 짊어지고 가야 하는 백 패킹의 채비는 무엇보다 가벼워야 한다. 그래서 백패킹 짐을 쌀 때는 야영에 꼭 필요 한 건지 아닌지부터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담아내는’ 짐이 아니라 ‘덜어내는’ 짐을 꾸려야 한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을 터이다. 평생을 숱하게 담아내다가 결국은 덜어 내야 할 일만 남는다. 


목적은 정상이 아니라 길에 있다 


잠시나마 정상을 맛보고 다시 5㎞를 내려오는 길에서 실컷 눈 구경하며 선자령을 만끽한다. 문득문득 무심코 잊고 살던 순수를 발견한 듯, 첫사랑이라도 만난 듯 하얗게 설레는 마음을 겨우겨우 부축하면서 길지 않은 산길을 내려온다. 

사실 목적은 정상에 있지 않았다. 선자령에 오르고 내리는 길은 과정이자 동시에 목적이었다. 눈꽃 길을 걸으면서 잠시나마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겨울 낭만을 누린다. 꽃길만 걸을 수 없는 게 인생이겠지. 시련 속에서 비로소 피워 올리는 눈꽃이 라서 더 애정이 간다.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다는 선자령이지만 바람맞으며 걷는 길에 서 답답했던 마음, 딱딱해져 버린 머릿속을 말랑말랑 녹여낸다. 

그래서 눈 오는 날이 면 우리는 선자령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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