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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만나 神을 느꼈다 - 세계시민기구(WCC) 곽영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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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만나 神을 느꼈다  


  세계시민기구(WCC) 곽영훈 회장


​무중생유(無中生有), 손자병법의 36계중 제7계에 해당하는 전략이다. 지혜로운자는 無에서 有를 창조한다는 탁월한 전략이다. WCO 곽영훈 회장의 '창조’는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거나 어떤 순간을 극복해내기 위한 전략이나 방법론이 아니었다. 수많은 도시를 마치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와서 계획하고 만들어 낸 것처럼 합리적이고 예술적으로 완성 해왔다. 그의 글로벌한 ‘도시건설’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고찰이 녹아있는 ‘神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만들어 낸 기적과도 같았다.
글 이지영 기자  사진 PEOPLE 365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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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서울 약수동의 산자락 끝에는 서양식 건물 두 동이 나란히 마주 보며 서 있다. 그 앞에는 ‘WCO’라는 낯선 문패가 나타난다. WCO는 세계시민기구, 즉 ‘World Citizens Organization’의 약자로 세계시민기구다. 순수 민간 차원의 세계시민단체로 곽영훈 회장이 1987년에 설립했다. 인터뷰 이전까지는 국제무대에서 활동해 온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WCO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단순히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상의 의미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간 그가 계획하고 실행해왔던 수많은 도시개발 프로젝트의 원도(原圖)들, 정사면체에서 기인한 건축 철학 등 모든 것이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은 지혜의 결실인 듯 눈앞에 펼쳐졌다.

WCO는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해왔는데 전 지구적 공존체인 우리 인류의 소통과 세계평화를 위한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 주를 이룬다. 실크로드에 있는 각 도시를 돌아 가며 포럼을 개최하는 교류협력사업인 ‘글로벌 실크로드 (Global Silk Road)사업’, 세계적으로 평화를 수호해 온 사람에게 영광스러운 상을 수여하고 배달해주는 ‘세계시민네트워크사업’, 그리고 세방화 된 환경조성을 위한 ‘세계시구축사업’ 등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사업의 기저에는 곽영훈 회장의 사람과 환경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라 사랑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이런 사업들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진 세계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난 60여 년간 대한민국의 굵직한 개발 프로젝트를 실현해왔고 전 세계 여러 국가의 개발계획들을 창조해왔다.

불가능해 보였던 88서울올림픽 성공의 주역
1987년, 한국의 상황은 불안정했다. 외신들은 ‘88 서울 올림픽’이 불가능할 그것이라며 앞다퉈가며 보도했다. KAL기 폭파사건, 김포국제공항 시한폭탄 테러 사건, 87 민주화 항쟁, 박종철, 이한열 사건 등의 연이은 악재는 IOC 위원들조차도 1988년 개최되는 제24회 서울올림픽(이하 88서울올림픽)을 불가피하게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놓게 했다.

그는 특단의 조처를 내렸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1964년, TV로 도쿄올림픽을 시청하다가 서울올림픽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1972년 여름에는 독일 뮌헨올림픽을 보기 위해 유럽으로 배낭여행까지 하면서 철저히 서울올림픽 마스터플랜을 준비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드디어 88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 되기까지 그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88서울올림픽을 위해 영혼을 바쳤다고 회상하는 그는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국내 저명인사들을 설득해 서울올림픽평화위원회 SAO(Seoul Assembly of Olympeace)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WCO 활동의 시발점 이라고 볼 수 있는 SAO에는 문태갑 서울올림픽성원국민 운동 본부장이 먼저 뜻을 같이 해왔고, 이어 강영훈, 김성진, 이태영, 이홍구, 정근모, 김옥길, 구상, 이한빈, 설창수, 남덕우 등 많은 사람이 동참했다. 당시 서영훈 적십자사 사무총장의 추천으로 88서울올림픽 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함석헌옹을 추대했다. 또 윤보선 전 대통령, 한경직 목사, 윤석중 아동문학가, 이강훈 광복회 회장 등 많은 분이 뜻을 모아 전 세계에 서울평화위원회의 염원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반드시 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할 수 있다는 의지를 만방에 표방하기 위해서였다. “An Appeal for Olympeace(올림픽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염원)”라는 제목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여러 나라말로 서한을 보내서 취지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냈다.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부시 부통령, 히스 영국 총리, 슈미트 서독 수상을 비롯한 여러 국가수반들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 각국 대사 등 총 532 명이 서명 서한을 보내왔다. 테레사 수녀,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들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서구권에만 ‘Olympeace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비밀스럽게 공산권도 챙겼다. 당시 소련과는 수교가 안 된 상태여서 직접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친구처럼 지냈던 유럽 출신 외국 대사를 통해 소련의 대통령 고르바초프에게 88서울올림픽에 꼭 참가해 달라고 편지를 두 번이나 보냈다. 그 후 곽 회장은 서울을 방문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에게서 놀랄만한 소식을 듣는다. 당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크렘린궁까지 찾아와서 88서울올림픽에 참가를 보이콧해 달라 요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 (perestroi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를 주창한 사람으로 보이콧할 수 없다고 하니 김일성이 실망해서 돌아갔다는 얘기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올림픽 사상 최다 참가국인 160개국 1만 3,6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고, 한국은 종합 4위를 차지하며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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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하루 전날인 1988년 9월 11일에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이어나가는 성산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영원한 평화의 불’ 점화식을 하고 난 직후 SAO 위원장이었던 고 함석헌옹은 “우리가 일본을 이겼어. 내가 이 광경을 보려고 지금까지 살아있었던 것 같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하시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올림픽 당시 그가 주도하여 탄생시킨 또 하나의 역작은 바로 88서울올림픽의 주제가다. 전 세계에 싱글앨범으로 1,700만장을 판매한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독일, 일본, 홍콩, 스위스, 스페인을 비롯 한 17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올림픽 기간 중 라디오 방송 리퀘스트 1위를 달리는 등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서울대 미학과 김문환 교수가 작사할 수 있도록 장을 연 사람이 바로 그다. 전 세계적으로 '평화’의 문을 두드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에스토니아 등의 독립을 가져오게 된 계기였다고 거론되는 ‘88 서울올림픽’ 개최의 성공 속엔 그의 열정과 끈기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21세기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위대한 일을 해낸 것입니다.

전쟁의 방식이 아닌 평화의 이념을 가지고 전 세계에 평화의 불씨를 만들어 낸 우리 국민의 승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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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도시개발계획에도 참여
도시건축가로서 그의 창조력이 빛을 발한 것은 88서울올림픽 마스터플랜뿐만이 아니다. 1993년 대전엑스포 마스터플랜, 서울대학로설계, 서울지하철 2호선 계획, 한강종합개발과 88올림픽대로 계획, 인천국제공항 계획과 입지선정, 일산신도시 설계, 대전시 계획, 대덕 연구단지와 KAIST 계획, 여수한옥시청사 설계, 여수반도 관광종합계획, 광양컨테이너항 계획, 제주도종합개발계획과 광주, 목포 도시 계획 등 국내 거점 도시 개발계획의 틀이 그로 인해 탄생했다. 건축과 도시 설계에 있어서 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그의 해외 플랜으로는 나이지리아 아부자(Abuja) 새로운 수도 2 단계 마스터플랜, 필리핀 수빅(Subic) 만 이코노폴리스 개발, 이집트 시나이반도 과학문명도시 STV(Sinai Technology Valley) 마스터플랜, 알제리 시디압델라 과학기술도시 마스터플랜, 가나 AWD(Ahanta West District) 지역 녹색도시 설계, 네팔 부처님탄생지 룸비니 세계평화시 설계 등이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 걸쳐 도시설계 및 건축 관련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디자인했다.

중국에서 발표한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상·해상 실크 로드)’의 아이디어도 그가 제공했다. 곽 회장은 1990년 중국의 베이징 아시안게임 전야제에 초청을 받았다. 서울올림픽공원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자격으로 초청 받은 자리였다. 인민대회당에서 곽 회장은 당시 덩샤 오핑의 대리인으로 불리던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 장 바이파 베이징 부시장, 김용래 서울시장, 고건 총리와 함께 주빈석에서 만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양 주석은 “덩샤오핑이 오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못 왔다”며 양해를 구하고, “덩샤오핑이 자신의 세 가지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전하고 우리한테도 의견을 물어달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의 세 가지 정책이란 첫째, 흑묘백묘(黑猫白猫) 실용론으로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이었고, 둘째, 중국 학생들은 영어를 목숨같이 생각하고 배우라는 것, 셋째, 중국은 땅이 넓으니 단계적 개발을 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선동후서(先東後西)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곽 회장은 첫째와 둘째 화두는 중국에서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지만 셋째 ‘선동후서 정책’에 대해서는 간단히 의견을 제시할 테니 전달해달라고 하면서 실천계획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그는 “일본이나 한국은 올림픽과 엑스포와 같은 글로벌 이벤트를 통해 발전했습니다. 중국도 그 발전모델을 따르는게 좋겠어요. 즉, ‘선동’ 개발의 방법으로 베이징에는 올림픽을, 상하이에는 엑스포를 유치하고, ‘후서’ 개발로는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손오공, 삼장법사, 사오정, 저팔계가 나오는 소설 ‘서유기’처럼 서진(西進)하면서 발전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모두 받아들여졌다.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0 상하이 엑스포가 개최 되면서 중국 도약의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후서정책으로 제안한 실크로드 전략은 1991년부터 시작돼 오늘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급기야 2013 년 11월에는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이름으로 시진핑의 국가계획이 되었다. 그가 계획하고 실행해온 전 세계적 프로젝트는 그 나라와 환경과 역사에 맞는 맞 춤형 개발 전략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설계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도시계획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그의 ‘삶터 만들기’는 절대불변의 원칙 이 있다.

“일단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계획을 구체화합니다. 그 사람들이 잘살고 못살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지위가 있건 없건 간에 똑같이 존경해야 합니다.” 그의 도시건축 철학은 기존의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되도록 그곳의 환경을 그대로 살려서 개발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일례로 ‘룸비니 세계평화시’의 경우는 자연경관을 가급적 침범하지 않고 울타리나 길 등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어 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팔정도(八正道)를 활용하여 뜻과 자연을 일치시킨 작품 중의 작품 이다. 하나님이 만든 것을 맘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적중했다.

‘배워서 남 줘라’
그의 이런 ‘삶터 가꾸기’는 고등학교 시절 친형이었던 고 곽일훈 선생과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졌다.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라며 형은 ‘삶의 틀’을 만들겠다고 하셨죠. 그러면 저는 ‘삶의 터’를 만들겠다고 하니 형님께서 ‘건축으로는 가장 최고 수준에 있는 대학이 MIT 공대이니 그곳에 진학 해서 건축학을 공부하면 좋겠다’라고 한 것이 저의 삶터 만들기의 시작점이 된 거죠.”

원래 가풍 자체가 나라 사랑이 확고히 정립된 집안이었다. 6·25전쟁 중에도 괴테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맛을 모른다’라는 시구를 벽에 붙여놓을 정도로 교육을 중시했다. 그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안의 분위기라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는 당신이 입으실 옷은 스스로 만들어서 입을 정도로 희생과 봉사 정신이 투철했고 돌아가실 때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을 만큼 평생을 근검절약으로 일관했다. 친형 고 곽일훈 선생은 4.19 당시 서울대 재학생 신분으로 투쟁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을 고비를 넘겼고 전 국제 PTP 한국본부 아시아태평양평의회 의장이자 전 대한적십자사 봉사회중앙협의회 의장을 지냈을 만큼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가 일치된 삶을 살았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이 마치 훈제되듯이 갈비뼈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훈습이 되는 것이 교육이라고 말하는 그는 “Learn to unlearn” 개념은 하버드대 대학원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동안 배움이라는 것이 오히려 편견을 쌓게되는 결과를 낳았으니 이제는 그 ‘잘못된 교육으로 인한 편견을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이어서 칸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이성과 인식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숙성되어 왔지만, 그가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다. 이해는 하되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다름이 어떤 편중된 가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배척되거나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양성에 대한 평등을 강조하는 그이다. 마땅히 다 달라야 하고 그 다름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한단다.
“사과는 사과같이, 배는 배같이 자라게 하고 필요한 만큼 열매를 맺게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죠. 그러기 위한 교육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고 그 교육은 반드시 타인의 행복에 기여가 되는 이타 정신을 기초로 했을 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전 세계에 사는 인간 개개인과 지구 곳곳의 다름을 알고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문명으로 전환되어가는 것이 참다운 배움의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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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플로렌스처럼 대한민국 국운의 날개 펼 때
2000년 2월 23일 자 《The Boston Globe》 지에서는 곽영훈 회장을 ‘APPLE’ 이라고 표현했다. Architect(건축), Planning(계획), Public policy(공공정책), Landscape architecture(조경가), Educational philosophy(교육철학) 등 그가 전공한 분야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끝없는 지식 탐구에 대한 열정과 지혜의 실천으로 그의 시대정신 진단은 정확했다. 지금 우리는 희비의 쌍곡선이 만나는 시점에 있다는 것. 160위가 넘는 경제 최하위국에서 세계 9위의 경제 대국으로까지 올라왔는데 자살률은 세계 1위다. 정신적인 행복의 순위는 또다시 최하위가 되었다. 10만 명당 60명 죽는 꼴이다. 2위인 슬로베니아가 10만 명당 40명으로 1위인 우리나라와 차이가 크다. OECD 평균은 10만 명당 20명인 것을 놓고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제는 기적은 이루었는데 삶의 만족도 지수는 160위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최하위였던 것이 정신적으로 최하위가 되었다. 희비가 엇갈리는 쌍곡선에 서 있는 현재 우리는 조금 더 ‘사람다움’을 고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혁명의 근원지였던 르네상스의 플로렌스(Florence, 피렌체)처럼 영혼을 꽃 피우고, 철학 정치가 실현되었던 그리스의 정신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다시 살아나 국운의 날개를 펴야 합니다. 전 인류가 국가경계를 넘어서서 다 같이 어울려 사는 것에 역할을 하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가 회통(會通)하고, 화통(化通)하고, 상생(相生)하는데 기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국이자 인류 사랑의 정수가 아니겠습니까?”


곽영훈 회장은 MIT에서 건축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공부하고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을 거쳐 동국대 학교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홍익대학교 도시계획과 교수, 제주대학 교 석좌교수를 지냈다. 88서울올림픽과 대전엑스포, 여수엑스포의 밑그림을 그린 마스터 플래너이 다. 유엔개발계획 UNDP의 수석 건축가·계획가이면서 자문관을 겸할 만큼 세계적인 개발프로젝트 를 만들어 왔다. 2012 여수엑스포 여수시 유치위원장과 중국 우루무치의 실크로드 도시연맹 주석 을 역임했고 현재는 1987년에 창립한 WCO(세계시민기구)의 대표이며 사람과 환경그룹 회장, 대한 적십자사 RCY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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