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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이 ‘다름’을 넘어설 수 있게 존중과 배려로 지구촌의 균형을 맞춰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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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 세이브더칠더런 이사장

‘같음’이 ‘다름’을 넘어설 수 있게 존중과 

배려로 지구촌의 균형을 맞춰가는 삶

“당신이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인터뷰 이를 처음 만나면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같음과 다름'. 다양성의 관점에서 다름은 인정하고 같음을 중시하는 것. 오늘 <이세온이 만난 향기나는 사람>의 첫 번째 데이트 상대인 세이브더칠드런 오준 이사장의 답변이다. 망설임 없이 이렇게 화답해오는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행 이세온 이사 글 최진희 기자 사진 배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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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주는 울림

세이브더칠드런 오준 이사장과 만나기 전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많은 글에서 지난 2014년 12월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한국대표로 참가한 자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오준 유엔대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 또한 과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그의 연설 영상을 찾아보았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 사람들은 그저 아무나 (anybodies)가 아니다. 수백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의 가족들이 여전히 수백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준비해 간 연설을 마치고, 3분 정도 원고도 없이 즉흥적으로 발언한 소견이었다. 담담한 표정과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힘을 모아주길 희망한다는 말에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평소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조차도 감동을 받기에 충분한 어조였다. 한국이 비상임이사국 자격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회의이자 안보리가 북한 인권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한 첫 회의였기에 그의 연설이 주는 울림이 더 특별했으리라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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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북한 인권에 관한 연설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더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나요?”

“아닙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어요.”


반듯한 재킷 차림에 푸근한 표정을 짓는 오준 이사장은 그것이 변명해야 할 일인 것처럼 쑥스러워했다. 

“유엔 회의장에서 한 연설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까지 화제가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누군가 저의 연설 장면을 영상으로 올렸는데, 그 반응에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150개의 페이스북 친구 요청이 왔어요. 대부분 대학생과 군인 등 한국의 젊은 친구들이였죠. 당시 페이스북 친구가 800명이었는데, 3개월 만에 허용한계치인 5천 명을 넘었고, 연설 동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더라고요.” 


고무적인 것은 한국젊은이들의 반응이었다.  30~40대까지는 몰라도, 20대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조차도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저의 어머니는 개성 출신이고, 장인 또한 함경도 출신이십니다. 두 분 다 실향민이시죠. 북한 사투리를 직접 들으면서 자랐어요. 지금의 40대까지만 해도 한 다리만 건너면 아마도 고향이 북한인 어르신이 주변에 계실 겁니다. 하지만 20대는 달라요.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니까요. 그런 그들에게 저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진로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친구까지 있다니 놀랄 따름이죠.”

이 연설이 워낙 회자되다 보니 더이상 부각되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그 말에 대한 책임감은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를 위해 걸어온 길

오준 이사장은 2017년 2월 퇴직 이전까지 외교관으로 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외무고시를 준비해 외교관의 길로 접어든 게 1978년이니 무려 40여 년 동안 외교관으로 살았다. 그중에서도 다자외교 전문가다. 다자외교(多者外交)란 여러 국가의 외교관들이 모여 각자의 이익 또는 모두의 이익을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을 말한다. 유엔의 활동 등이 대표적인데, 오 이사장은 유엔 대표부에만 4번 근무했다. 한국 외교관으로서는 유엔 근무 최다 기록이다. 특히 유엔 안보리 의장직에 이어 경제사회이사회(경사리) 의장을 역임했다. 유엔의 두 개 핵심기관 의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최초이고 국제적으로도 극히 드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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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는 국경을 초월하여 점점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국경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봐야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만 보더라도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나 그동안 국제사회의 리더를 자처해오던 국가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회원국들의 대표가 모여 회의를 통해 중요 이슈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외교관들의 일이죠. 하지만 결국은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죠. 코로나와 같은 글로벌 이슈가 대두됐을 때는 인류 공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국경을 폐쇄하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요.”


“자국 우선주의가 강해지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제무대에서 일하는 외교관의 경우 국가를 대변해 변명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인권에 반대되는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민주국가가 됐기 때문에 지금은 그럴 일은 없습니다만,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중심으로 바라보는 인권보다는 시대의식을 반영하여 사회를 중으로 바라보는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군요.” 

 

외교관 임기를 마치면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었던 오 이사장은 세이브더칠드런의 한국본부 상임이사장 외에 청각장애인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 및 보청기를 지원하는 ‘사랑의 달팽이’의  수석부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과 KID 국제정책대학원에서 북한 인권 등에 대한 강의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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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 권리의 역사다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을 사회, 그중에서도 사회적 약자에게 돌렸을 때 제일 관심을 가진 대상은 아동의 인권이었다. 아이들이 미래의 세상을 이끌어갈 주체이기 때문이다. 오 이사장은 특히 세이브더칠드런을 창설한 에글렌타인 젭 여사의 시대를 앞서나간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한다. 

“에글렌타인 젭 여사의 세이브더칠드런 창설 일화는 유명합니다. 1919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어른들의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서 영국에서 설립했습니다. 영국은 전쟁의 승전국이었고 그녀는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어린이를 돕기 위해 이 기구를 설립했다고 해요. 당시는 평화조약 체결 전이라 패전국의 아이들을 돕는다고 하자 반대가 심했어요. 결국 재판에서 유죄판결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최후 진술은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전쟁의 패배감과 적개심으로 아이들을 미래를 해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판사는 그 말에 감동했고, 벌금을 대신 내주었다고 해요. 그리고 재판관이 내준 그 돈이 세이브더칠드런의 첫 기부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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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24년 국제연맹에서 세계 최초로 세계아동권리가 채택됐고, 이것이 1989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모태가 됐다. 아동의 권리를 체계화한 세이브더칠드런은 곧 아동권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00주년을 맞은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인종,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 활동하는 국제 구호개발 비정부 기구(NGO)다. 한국본부는 1953년 6.25 전쟁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처음 한국에 깃발을 꽂았다. 영국·미국·캐나다 등이 한국에 지부를 창립하고 부산을 중심으로 구호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에는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의 전신인 한국지역사회복리회에서 ‘내몽골 기초교육지원사업’을 시작하면서 43년 만에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성장했다. 


아동의 ‘잊힐권리’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어떠한 아동도 사생활, 가족, 가정 또는 통신에 대하여 자의적이거나 위법적인 간섭을 받지 아니하며 또한 명예나 신망에 대한 위법적인 공격을 받지 아니한다. 아동은 이러한 간섭 또는 비난으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10세~19세 청소년의 99%가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동은 온라인 세상에서 공부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찾고, 게임을 하면서 친구를 사귀며,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동은 ‘디지털 발자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다양한 기록을 남기게 되는데 아동뿐만이 아니라 아동의 보호자나 주변 사람들이 올리는 글이나 사진, 영상을 통해서도 아동의 다양한 삶의 흔적이 디지털발자국으로‘박제’됩니다.

통계를 보면 이미 10대 청소년 94.2%가 개인정보 유출의 경험이 있습니다. 아동을 개인정보 보호의 대상에서 나아가 주체로 바라보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2022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아동·청소년개인정보보호기본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또 올해 4월에는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가 담긴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노출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지우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아동의 ‘잊힐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지만, 아직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보니 아동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아동의 개인정보를 노출한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검색되지 않게 가려줄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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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손쉽게 퍼져나가는 온라인 게시물의 특성상 아동은 자신의 정보가 어디까지 퍼져 나가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아동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동과 보호자의 노력만이 아니라 아동의 잊힐권리를 보장하는 법령과 제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합니다. 저희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의 잊힐 권리를 위한 제도를 국가가 마련하도록 요구하며 딜리트 더 칠드런(Delete the Children)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지지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놀 권리라고 하면 뛰어 놀 권리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의 어른들은 노는 것도 일로 생각합니다. ‘자, 이제 뭐하고 놀까?’ 고민하죠. 그런 놀 권리가 아닙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권리를 말합니다.”


“가만히 있을 권리라.. 저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 중 한 사람으로서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지난 코로나 사태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처음에는 건강을 염려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학사일정과 시험에 초점이 맞춰지는 데 적잖이 놀랐습니다. 특히 고3의 경우 수능 일정에 차질을 빚는게 가장 큰 일처럼 보도되는 것을 보고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고3 중에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친구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마지막 학창시절일 텐데, 마지막 학교에 대한 추억을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없더군요.” 

 

“평소 음악과 미술 등 예술에 조예가 깊으셔서 더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경향도 없지 않아요. 대학시절 음악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을 했었는데, 그것이 유엔 대사들로 구성된 음악밴드인 ‘UN Rocks’ 활동으로 이어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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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Rocks는 나름 진지하게 음악 활동을 했어요. 유엔의 각종 행사에서 연주를 해서 문화외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술은 중고시절 6년 동안 미술반 활동을 하며 지금은 취미로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그려 아는 분들에게 보내는 정도예요. 확실히 문화예술을 접하다 보면 사회를 다양하게 보는 시각이 넓어지는 것 같긴 해요.” 


같음과 다름에 대한 고찰

오 이사장은 외교부 퇴직 이후 여러 활동을 하면서 ‘같음과 다름’이라는 부분에 꽂혀 있다.  유엔 대사로 일하던 시절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유엔본부로 가는 길에는 노숙자들이 유독 많았다고 한다. 맨해튼은 미국에서도 부유층이 많이 사는 도시임과 동시에 빈부의 격차가 가장 심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런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같은데, 사는 모습은 왜 이렇게 다를까를 늘 생각했다. 


“물론 사람은 서로 다 다릅니다. 하지만 인권을 실현함에 있어서는 ‘같음’이 ‘다름’보다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평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다양성이 긍정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이나 장애인에 대한 거부감 등은 ‘다름’의 이면적인 모습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다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평등의식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같음’이 ‘다름’을 압도해서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문제도 그렇다.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후천적인 이유로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누구나 하나쯤 장애를 갖게 된다. 그 누구도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2015년 유엔 대사이면서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직을 맡고 있던 당시 무명의 예술가인 김근태 화백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김 화백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생존자로서 발달 장애아동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하게 됐다고 해요. 실제로 장애인권리협약이 추구하는 장애인의 동등한 사회 참여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발표해 왔어요. 

그 후 김 화백은 제네바, 파리 등 유엔 기구가 있는 거의 모든 국제도시에서 전시회를 개최했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외교부를 퇴직한 후 장애인 인권 관련 단체와도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처럼 장애가 ‘다름’이 아닌 삶의 한 단계에서의 현상이라는 인식이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오 이사장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음’에 대한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다름’을 존중하고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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