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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노래가 위안이 된다면 부르고 또 부르리라 " - 가수 정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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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노래가 위안이 된다면 부르고 또 부르리라 "


 가수 정미조 


몇 년 전부터인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전에 들려왔다.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듯 40여 년 전부터 팬을 자청했던 사람들은 TV 앞에서 콘서트장에서 야외무대에서 그의 노래에 빠져들며 추억을 불러들였다. 70년대 스타 가수로서의 화려한 무대를 내려 놓고 본래 전공이었던 화가의 길을 걸어갔던 가수 정미조. 그는 자신의 노래 〈귀로〉처럼 그렇게 다시 돌아왔고 젊은 날의 팬들은 물론이고 그의 노래를 새롭게 알게 된 젊은이들도 만난다. 

글 박창수 기자  사진제공 JNH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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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무대, 서정시 같은 맑고 깊은 목소리 

어린 꿈이 놀던 들판을 지나 / 아지랑이 피던 동산을 넘어 나 그리운 그곳으로 돌아가네 / 멀리 돌고 돌아 그곳에….“ 가수이자 서양화가인 정미조가 40여 년의 세월을 넘고 넘어 2016년 발표한 앨범 《37년》에 담은 신곡 〈귀로〉(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는 듣는 그 순간이 전부가 아니다. 가슴속으로 머릿속으로 여운이 그득하다. 살다 보면 깨닫게 되는 속일 수 없는 느낌과 감정 그대로다. 서정성 짙은 노랫말과 가수 특유의 절제된 듯 그러나 숨기지 않는 감성이 하나로 어우러져 한 편의 서정시가 된다. 


진정한 노래는 마냥 질러대는 게 아니라 물감처럼 속내를 풀어놓는 거라고 했던가. 콘서트장에서 나이 지긋한 누군가는 자신의 얘기인가 싶어 소리 죽여 눈물을 훔치며 들었고 또 공연에 함께 참여했던 청년 예술가 중 누군가는 삶이란 이런거구나! 라며 사색에 빠져들었다. 가수 정미조 자신도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노래처럼 그는 다시 돌아왔다. 2016년 2월 이었다. 자그마치 37년 만에 새로운 음반을 낸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대학 강단에서 퇴직한 그 무렵만 해도 사실 다시 가수의 길을 걸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거나 어떤 준비를 한 게 없었다. 그저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었다.


“최백호 씨를 만났는데 목소리가 여전히 살아 있으니 다시 노래를 해보라는 거예요. 그 러면서 작사가로 유명한 JNH뮤직 이주엽 대표를 소개했습니다. 두 분의 부추김이 저를 다시 무대로 불러낸 셈이죠.”

새 앨범을 내고자 하는 욕심은 없었다. 더욱 이 음반제작 비용을 익히 잘 아는 그로서는 기획사의 제안에 되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끝까지 숨길 수 없는 한 가지가 그에게도 있 었다, 마음속 어느 곳에선가 예전에 못해본 CD로 기념 앨범 하나쯤은 내는 것도 좋겠다 는 생각이 꿈틀댔다. 이렇게 탄생한 앨범 《37년》에는 과거 히트곡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를 비롯해 신곡 〈귀로〉, 〈그대와 춤을〉, 〈피려거든 그 꽃이여〉등 13곡이 실렸다. 37년 만에 다시 녹음하던 그날은 정말 긴장 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지 듣는 사람은 어떨지 여간 걱정되지 않았다. 예상 밖이었 다. 녹음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밖에 있던 스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Good’이라고 외쳤다. 

컴백 앨범이 나오자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유례없이 완성도 높은 복귀 음반’, ‘세월이 만들어 낸 목소리’라는 절찬이 쏟아졌다. 준비한 CD의 초도 물량이 금방 소진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회자되자 LP로도 제작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결국, 2년 후 LP로 만들어졌으며, 수집가들의 집중 타깃이 되어 이 또한 빨리 동났다. 

‘가수 정미조’를 기억하는 과거의 팬들은 물론 이고 젊은 층까지 연륜으로 더욱 깊은 색조를 띤 그의 목소리에 빨려들었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앨범 제작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앨범 《젊은 날의 영혼》을 내는 즐거운 일도 벌어졌다. 이쯤 되니 다시 돌아온 무대에서 ‘정미조! 역시 다르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또한 새로운 무대가 삶 의 에너지를 불러오는 즐거운 날들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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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앨범표지>


젊은 날의 꿈을 찾아

공부와 강단에서 머물렀던 긴 여정 

50대 이상의 장년층 노년층들은 ‘정미조’ 하면 〈개여울〉또는 〈휘파람을 부세요〉등등 그의 히트곡 제목들을 먼저 말한다. 그는 가수였고 1970년대 가요계의 스타였다. 20대 시절이 었지만 '반짝’ 연예인이 아닌 이미지가 남다른 이를테면 클래스가 좀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노래는 시처럼 잔잔하면서도 공감과 울림이 있었다. 

이화여대 미술 전공 출신이라는 색다른 이력만큼이나 이미지 또한 품격이 느껴진다는 평이 자자했다. 

당시 가수가 된 것도 사전에 작정하고 나선 일은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였다고나 할까. “학교 행사에서 제가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했어요. 그때 패티김 선배님이 초대가수로 오셨는데 저를 부르더니 직접 진행하는 방송 프로에 나오라고 했어요. 가수를 지망했던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행운을 거머쥔 일 인데 저는 좀 입장이 달랐어요.”


학교에서는 재학 중 연예인 활동을 금했다. 졸업하면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지도교수는 ‘뭐든 젊을 때 해야 한다. 하다가 나중에 그림 그려도 된다’고 

조언했다. 유년 시절부터 무용, 노래, 미술 다방면으로 재능이 남달랐다. 뭐든 기회가 주어 졌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덥석 가요계에 데뷔하게 됐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만 7년 동안 가수로서는 더 없는 전성기를 누렸다.

미술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까? 남들은 목숨 걸고 지키려 발버둥 치는 스타의 자리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프랑스 파리로 훌쩍 떠나 버렸다.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를 거쳐 국 립장식미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파리 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자그마치 14 년에 걸쳐 서양화가로서 작품활동과 학문탐구에 빠져든 시기다. 뒤를 돌아다볼 여유 없이 오직 미술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귀국 후 20여 년간은 수원대학교 미술 대학 서양학과 교수로 몸담았다.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도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어요. 교직자라고 해서 가르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수업 준비를 위한 공부도 계속해야 하고 바뀌는 커리큘럼과 시스템 에도 적응해야 했죠. 작품활동까지 이어가야 하다 보니 늘 바쁘게 보냈어요. 물론 후회 없 이 걸어온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음악 무대를 떠난 시간은 짧지 않았다. 더욱 이 젊은 가수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트렌드 가 급변하는 데다 호불호가 그대로 반영되는 곳이 대중음악계 아닌가. 시쳇말로 ‘왕년의 스타’는 맞지만, 시대가 이러하니 가요계에 재기 한들 성공에 담보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멋지게 ‘다시, 정미조’가 됐다. 멍석을 깔아준 가수 최백호와 JNH뮤직 이주엽 대표에게 정말 감사한 인연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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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후배들과 소통하며 

'함께’를 사랑하는 아티스트

“그림은 그림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감동하는 반응의 시차가 다르죠. 그림은 작가의 의도와 집중력이 시간을 타고 간접적으로 전달되니까 나름 시차가 필요하지만, 음악은 긴장 속에서 그대로 쏟아내고 청중 반응 또한 바로 나타납니다. 즉시성이라고나 할까요.” 

가수에게 노래를 들어주는 이들의 감동과 열렬 한 팬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후회 없는 삶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5년 전 LG아트센터 에서의 컴백 공연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혼자서 두 시간 동안 22곡을 부르고 공연을 마쳤을 때 계단에 줄지어서 자신을 기다리며 갈채를 보내는 수많은 팬을 보는 순간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고. 그 보답으로 앨범 사인을 자그마치 한 시간 반 동안 이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 그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후배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좋다고 말할 때다. 세대차이가 크건만 이질감을 느끼기는커녕 공감대가 크다고 하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게다가 공연이든 음반 협업이든 함께 하자고 할 때는 더없이 신이 나서 두말할 나위 없이 동참하게 된다고 한다. “지난 3월엔 통영국제음악제에 초대를 받아서 그곳에서 나흘 동안 머물렀어요. 발레리나인 김주원 무대감독이 함께 무대에 오르자고 먼저 제의를 했어요. 저를 찾아와서 “귀로를 선생님이 직접 불러주셨으면 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저 또한 김 감독의 인간적인 매력과 겸손함에 반했고요. 더 큰 감동은 공연이 끝났을 때 감독과 안무가들이 저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던 순간입니다.” 젊은 후배들과 호흡을 맞춰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그에겐 가수이자 에프이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김현철과 협업으로 남긴 앨범 또한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일이 됐다. 김현철이 작곡과 편곡을 맡고 유발이가 직접 불어로 작사한 보사노바 곡을 그가 불렀다. 국내에서 제작한 앨범 중 불어 가사로 된 곡은 매우 드문 편. 아이유와 선우정아가 그의 노래를 부른 것 또한 후배 들과의 참 좋은 인연이라고 전한다.


젊은층과 소통을 잘하는 만큼 가수 정미조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라떼’나 ‘꼰대’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는 요즘 20대 젊은 음악가게서 음악을 사사중이다.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다.

“콜라보 앨범을 포함해서 5년 동안 앨범이 네 장 이나 나왔어요. 저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죠. 돈에 대한 욕심은 본래 없기도 했지만, 마음 비운지 오래됐어요. 다만 다시 시작했다면 더 잘해야 한다는 저만의 기질이 있어요. 그래서 기초부터 더 탄탄하게 세우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개인지도 때문에 20대를 만나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반대로 ‘선생님’으로 오해를 하곤 해서 한바탕 웃어넘긴다는 가수 정미조. 가수로서의 존재감은 물론이고 어른으로서의 품격이 다른 그가 인생 후배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한마디는 이랬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세요. 여건상 젊은 날엔 그늘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시절도 있지만 언젠가는 볕들 날 꼭 있으니까요. 꿈, 희망이란 단어만 있으면 됩니다. 힘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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