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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길을 묻다 - 통일 위한 맞춤형 솔루션을 찾자 - 외교통일위윈회 위원 김홍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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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EOPLE365
댓글 0건 조회 106회 작성일 21-08-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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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의 길을 묻다 


          - 통일 위한 맞춤형 솔루션을 찾자 -

              외교통일위윈회 위원 김홍걸 의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 같이 떠오르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이 말 속에는 국가와 민족을 향한 그의 사랑이 돋보인다. 평생을 민주화와 평화통일 염원의 한길만 걸었던 그는 대립과 분열의 막을 내리고, 평화와 통일의 새 시대를 여는 초석을 다졌다. 그의 삶을 따라 가기 위해 불철주야 통일을 향한 강한 의지와 노력을 드러내는 아들 김홍걸 의원의 눈빛을 보면 김대중의 정신이 그를 통해서 발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통일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대안을 만들었던 부친의 뒤를 이어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해 상임위원회를 외교통일위원회로 선택하고 통일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김홍걸 의원. 그는 한반도가 항구적 평화로 향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진실한 소통에 노력하면서 대화의 의지를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글 이지영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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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15 남북공동선언" 21주 년을 맞았다.

6.15의 정신을 이어 가려는 방안은 어떤 것들인가? 


최근 G7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정상들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 지난 5월, 한미정 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한미 실무진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모든 결과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그 시작 점이 되어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 번영정책,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까지 온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월 13 일부터 6월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마지막 날 발표한 선언이다. 이 선언에서 남과 북은 통일문제의 자 주적 해결을 선언하고 남북의 통일 방안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며 경제협력을 비롯한 교류 활성화에 합의했다. 1948년 한반도 분단 이 후 남북의 대표가 만난 첫 번째 회담이기에 고 김대중 대통령은 이 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 선언이 현실화가 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바로 북한과 협력적 기류가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었는데 당시 분위기는 북한이 햇볕정책 자체를 의심했던 상황이다. 마치 미소짓는 얼굴로 다가오지만 결국에는 흡수통일 하려는 계산 된 의도로 오해해서 남한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고 또 김영삼 정부 시절 안 좋았던 남북관계의 후유증도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서두르지 않고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을 하는 식의 민간차원의 교류를 먼저 하도록 장려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성과를 정부가 주도하고 독점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할 때는 민간이 먼저 나서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6.15 남북공동선언이 성사되기 전 2년 동안 주변국들 주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우리의 한반도 평화 철학인 ‘햇볕정책’을 열심히 홍보 하고 그들에게서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북한도 남쪽을 믿고 협상장에 나서 봐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에 6.15 정상 회담이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아버지께서는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서 외교를 잘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 하시면서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6.15도 적극적인 외교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6.15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외교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기조를 잡아야 한다. 결국, 당시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탄생한 6.15 남북공동선언이 제2연평해전 등의 물리적 충돌과 거듭된 북핵 위기에도 2000 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US-DPRK Joint Communique) 채택, 2002 년 최초의 북일 정상회담,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를 설정한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성과를 낳게 되었기 때문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다. 


보통 정상회담은 사전에 의제를 협의하고 충분히 논의한 다음에 진행하는 것이 관례다. 논의안건에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국가적 망신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정상회담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모두 정리해서 이견 조율을 해놓고 각국의 정상들끼리 만났을 때는 좋은 이야기만 하다가 합의한 내용만 발표하고 끝날 수 있게 전체를 준비하는 것이 외교의 상식이다. 그래서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는 1948년 이후 처음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정상 간의 회담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이런 논의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북쪽에서 그냥 오면 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심정으로 먼저 평양으로 가신 것인데 북쪽 사람들도 아버지께서 통 크게 결단을 내리신 것을 보고 놀랐던 것 같다. 북쪽 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 대단하다. 용기있게 결단을 내릴 줄은 몰랐다’ 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합의가 안 된 상황으로 정상 회담에 갔다가 성과 없이 돌아오면 실패했다고 비난받을 수가 있는데 정말로 큰 결단을 내리고 간 것이다.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첫 날 공동선언문이나 합의문 발표 이야기를 하니 ‘우리 둘이 만난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데 꼭 그런 것을 해야 하느냐’고 피하는 바람에 만 하루를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한다. 심지어 ‘당신이 연장자를 잘 모시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연장자인 내가 일부러 평양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가게 할 수 있었냐’라고까지 이야기해서 6.15 남북공 동선언문이 나오게 된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도 준비를 철저히 하는 성격이셔서 회담하러 가시기 전에 정부 기관에서 2~30년을 북한 연구만 했던 사람, 북한 사람 못지 않게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을 김정일 위원장으로 설정해놓고 모의 회담 연습을 했는데 그때도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감옥에 계실 때부터 만약에 대통령이 되어서 북한의 지도자와 회담을 하게 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을 했기 때문에 준비가 이미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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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분단된 민족의 재결합이라는  

주장이 현실 논리에 밀려가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것을 넘어서는 절대적 통일의 당위성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즘 젊은 세대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무조건 같은 민족이니까 함께 통일로 가야 한다는 막연한 이야기를 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 사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6~7년간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북한경제발전을 주도해서 만들어 낼 수도 있었고 북방 진출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는 북쪽이 우리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시기였는데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무산되어 북미 관계가 호전 되고 긴장이 완화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 차후에 들어선 부시(George W. Bush) 정권이 북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북한이 자연스럽게 거기에 반발해서 강경하게 대응하게 되어 핵 개발로 이어졌다. 결국, 상황이 나빠지면서 강경파들이 상대의 위협을 이용한 적대적 공존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또 우리 내부에서는 퍼주기 논란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난 10여 년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주로 부정적인 것만을 봐왔다. 남북이 협력하면 어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를 경험해 본 적이 없으므로 전쟁만 하지 않고 평화롭게 서로 외면하고 살아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남북이 조금씩 협력해 나가면서 작은 성과라도 보여주고 또 북방에 진출해서 얻게 될 큰 경제적 효과로 우리 민족이 제2의 도약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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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교류, 협력에 있어서 보강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현재는 북쪽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도 물론 이고 북쪽의 소위 엘리트들은 상당히 교육수준이 높고 국제적인 비즈니스 관례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직후와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로부터도 얼마든지 제재만 풀리면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같은 동포니까 우리를 최우선의 파트너로 생각할 거라는 맹목적 믿음은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 

잘못하면 북한경제는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의 침투로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냉정한 현실주의자란 증거다. 우리가 북한과 같이 윈-윈 할 수 있는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하면 북한이 우리를 파트너로 선정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적극적인 외교로 북한에 ‘결국 같이 갈만한 파트너는 남측이다’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북한을 상대로 만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주변 국가들을 상대로 우리가 외교력을 발휘할 때 가능하다. 비록 지금은 북미 관계가 좋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들을 설득해내고 북쪽에서 봤을 때도 역시 믿고 함께 할 만한 파트너는 한국 뿐이라는 믿음을 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때처럼 우리의 노력을 주변국들이 인정하고 지지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국내 에서는 통일문제에 관심이 없는 층이 있다. 이미 체제대결은 끝났는데 아직도 과거의 냉전 시대에 갇혀서 북한이 우리를 적화하려고 한다던 가 대결에서 이겨야 할 상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우리 스스로 용서하고 화합하면서 극복 해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견해를 밝힌 다면? 


먼저 지금의 북한 압박정책은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항복할 줄 알고 계속 제재의 수위를 높여 더는 제재를 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높였지만, 북한은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 상황 등을 이유로 들어 스스로를 더 고립을 시키고 있다. 결국, 제재만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선례가 없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 북미회담 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정착을 위한 협의를 했었을 때처럼 평화협정으로 북미 간의 외교 관계를 맺고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도 된다는 의지가 확인되면 비핵화는 훨씬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남쪽이 북한의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노리고 있다는 그 두려움 때문에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힘에 부치니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핵을 만든 것이다. 북측도 핵만으로 자신들의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 계속 고립된 상태로 가면 경제적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채찍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당근도 함께 써야 한다. 그래서 3년 전부터 계속 주장해 온 것이 ‘불가역적 비핵화’다. 즉, 원한다면 북한이 불가역적으로 경제발전의 길로 가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만약 핵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핵을 내놨다 하더라도 계속 북미 간에 긴장 관계가 유지된다면 우리로서는 어딘가에 핵을 또 숨겨 놓은 것이 아니냐고 북쪽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나라나 다른 국제컨소시엄이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대규모의 인프라 공사 같은 것을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북한도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리가 없다고 생각할 테니 안심할 수 있다. 우리도 북한경제가 발전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숨겼던 핵을 꺼내서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테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이 개혁 개방의 길로, 경제발전의 길로 가게 유도를 하면 자연스럽게 북한 핵 문제는 해결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 당장 북의 제제를 완전히 해제한다거나 외교 관계를 진전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북한을 안심시켜서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오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제재를 조건부로 해제해서 북쪽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시 제재를 가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재를 조건부로 해제해서 북에서 비핵화를 하겠다고 하니 우리가 그것을 잘 감시하기 위해서 연락사무소를 여는 것 이라고 이해를 시키고 북한에 연락사무소 정도라도 설치하면 일단 북한을 선제공격할 일이 없다는 약속을 해준다는 것이니 북한도 이해할 것이다. 만약 조건부로 제재를 해제했을 때 북한이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발생하는데 제재를 해제해서 북한 주민들이 그 동안 허리띠 졸라매온 삶을 넘어서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는데 북의 약속 불이행으로 제재가 다시 가해진다면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한 번 제재를 풀면 북쪽도 쉽게 과거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답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던데 


아버지께서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분이어서 감옥에 계실 때에도 독서를 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며 ‘불운인 것 같지만 사실은 행운이었다’라고 회상하곤 했다. 1982년, 전두환 신군 부 집권 후 ‘내란음모’사건에 휘말려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가 사면돼 사실상 미국으로 추방, 망명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야당인 민주당 상원 의원으로 활약하던 조 바이든 당선인과 인연이 있었다. 그때 미국 정관계 다른 인사들을 여럿 만나서 인맥을 만들었고 그 인맥을 민주화 운동과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소중한 인적자원으로 활용하셨다. 그 후에 바이든 대통령이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계실 때 상원의원 자격으 로 와서 아버지와 청와대에서 만났는데 여러 가지 고난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되어 노벨 평화상도 받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메셨던 넥타이를 받으면 행운의 상징이 될 것 같다며 두 분이 만난 자리에서 바꿔 메게 된 것이다. 벌써 20년 된 이야기인데 그 넥타이를 찾지는 못했다.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으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아버지는 워낙 뛰어나신 분이라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셨지만 저는 그 어른을 따라가기엔 한참 모자라고 10분의 1도 못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려 한다. 그것이 외교와 남북관계 분야인데 사실 지난해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외교통일위원들은 해외에 나가서 활동해야 하는데 해외 방문은커녕 매 년 가을에 하는 국정감사조차도 해외공관에 못 가고 화상으로 해야 했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북한과의 관계가 어렵긴 하지만 중국에 가서라도 북측 인사를 만난다든지 또는 북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국 인사들과 교류를 한다든지 했을 텐데 그런 활동들을 못 하고 있다. 또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일본과의 관계 개선 부분에서도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오히려 국회의원이 된 후로는 더 못하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 상황이 해결되면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또 민간차원의 외교와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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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 의원은 

현) 21대 국회의원(외교통일위원회) 

현) 김대중, 이희호기념사업회 이사장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 대표상임의장 

전) 퍼모나대학교 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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