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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웃게 사람을 울게 하는 소리 -소리꾼 조정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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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웃게 사람을 울게 하는 소리 -

소리꾼 조정래 감독 


인문(人文)은 사람의 마음결, 그 생각이 품은 무늬를 살피는 일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인문(人文)을 인문(人紋)이라고도 말한다. ‘ 사람의 무늬’속에 스민 것을 과학은 DNA로 밝히고, 영화는 정서로 표현한다. 한국인의 정서를 누군가 한(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것. 한민족의 흥(興)과 한(恨)을 담은 소리는 우리의 몸 어디에서,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걸까. 전국을 돌며 숨가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영화 〈광대〉의 조정래 감독을 만나 보았다. 

글 이성주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사진제공 조정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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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마음 소리로 보듬은 〈광대: 소리꾼 감독판〉 

세월을 거슬러 287년 전, 그러니까 조선시대 영조 10 년.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 간난이(이유리)를 찾아 나선 학규(이봉근)는 보잘것없는 천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력자인 장단잽이 대봉(박철민)과 몰락한 양반(김동완)등 초라하지만 듬직한 일행이 함께한다. 소리꾼인 학규를 따라 조선 팔도를 떠도는 그들의 눈에 비친 산하에는, 가난하고 메말라 비틀어진 민심밖에 없다. 제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이, 학규는 소리로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자신보다 더 힘겨운 이웃의 마음을, 백성의 심정을 오직 소리로 보듬어 안은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현재, 서울의 길동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밤새 되돌려 본 영화 〈광대〉의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어느 장면에서는 웃고, 다른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쳐야 하는 영화〈광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길동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큰 몸집 어딘가에 소년의 모습을 한 조감독의 눈은 꽤 충혈되어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소리꾼〉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오랜 세월 가슴에 담아 둔 ‘한국의 소리’로 힘겹게 영화를 만들었지만, 개봉관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돌았고, 지역 영화관을 찾아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새해를 맞았다. 포기가 아니라 내려놓아야 한다고 여길 그즈음, 행운처럼 7월에 감독판인〈광대〉를 대중 앞에 다시 새롭게 선보일 기회가 생 겼다. 


‘서편제’는 나의 꿈, 소리를 깨닫게 한 씨앗

“서울을 시작으로 목포와 광주, 거창과 부산 등을 돌고 있어요. 영화 〈소리꾼〉의 감독판을 다시 개봉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쉽게 잠들지 못하겠더군요. 요즘 두 시간 정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여기면서 시사회장에 오신 관객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광대〉는 〈서편제〉처럼 판소리를 다룬 영화라 생각했다. 하지만 러닝타임 130분 동안 〈광대〉는 뮤지컬에 가까운 질감이다. 특히 어린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는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이 오버랩된다. 톰 후퍼가 규모로 관객을 압도했다면, 조 감독의 영화는 속이 꽉 찬 슬픔을 한입 베어 문듯 아련했다. 규모보다 밀도의 차이가 감동 속으로 더 짙게 스며든 것이다. “우리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소리꾼의 소리’는 그 결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한국의 전통인 판소리로 서사를 풀어가다가, 다시 어느 장면에선 현대적인 편곡 방식으로 연출을 했으니까요. 아마도 영화를 보신 분들이 뮤지컬을 연상 했다면, 그런 방식의 접근 때문이겠지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영화 광대의 시작’은 언제 부터 준비되었을까. 

조 감독은 군 제대 후인 대학 3 학년 때 단편 시나리오를 하나 썼다. 그 당시를 돌아 보면 “국악을 소재로 삼았을 뿐,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소소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 삶이 고통스러울 때가 적지 않지만, 사랑은 서로를 의지하게 한다. 그게 행복의 한 편린이다.”라는 주제를 담아 놓았다. 그렇게 23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속에 학규와 간난이의 이야기가 조금씩 뿌리를 내려 ‘영화 광대’로 성장한 것이다. 


“시사회장에서 〈서편제〉와 비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감히 그럴 수도 없고, 그럴 때마다 손사래 칩니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제게 꿈이었어요. 그분은 <서편 제〉라는 영화를 통해 ‘뜨거운 무언가’를 제 가슴 속에 놓아두셨거든요. 그게 뭔지 모른 채 지내다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리’였다는 걸, 곧 깨달았지요. 그래서 대학 2학년 때 ‘된장국’이란 국악동아리도 만들었고, 북을 치면서 우리의 소리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제 가 좋아하는 ‘북과 소리’의 뿌리가 임 감독님의 〈서편 제〉에서 비롯한 것이지요.”


〈광대〉에 담아 놓은 가족 이야기

조 감독은 우리의 소리로 영화를 만들지만, 국악계에서 북 치는 고수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그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저마다 별자리를 가진다고 한다. 누군가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별을 이어 가면서 ‘자신만의 별자리’를 만든다. 조 감독의 별자리는 어떤 이야기로 이어져 있을까? ‘서편제’라는 영화 한 편이 바꾸어 놓은 그의 운명은 또, 어디로 이어질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조 감독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소리는 제 삶을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 이어놓은 끈 입니다. 영화 〈귀향〉의 시작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1년 어느 날 동료들과 함께 나눔의 집으로 국악동아리 봉사활동을 갔어요. 정말 아무런 목적 없이 할머님들에게 그저 우리의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님들에게 판소리도 들려드리고, 우리 민요도 함께 부르는 그런 활동을 오랜 시간 동안 했지요. 그러다가 그분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저는 그분들의 아픔을 영화라는 공간에 기록했을 뿐이지요.”


2016년 영화 〈귀향〉과 2017년의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19년 〈에움길〉이나 2021년 〈광대: 소리꾼 감독판〉에 담긴 조 감독의 생각과 마음은 한결같다. ‘영화로 할 수 있는 일과 영화가 해야만 할 일에 최선을 다해 정성을 심는 일’이다. ‘공들인다’는 말보다 조 감독이 꺼내놓은 ‘심다(心多)’가 더 짙게 다가온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보고 듣지만,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영화를 만드는 동안 미처 드러내지 못한 아련함이 여전히 그의 가슴에 남겨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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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을 반추하면 어떤 영화를 만들겠다고 머릿 속으로 구상하고 시작한 일은 하나도 없어요. 그저 마음을 따라간 것뿐이지요. 제게 〈귀향〉은 어느 날 마주 한 위안부 할머님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그분들의 한을 담은 것이에요. 평생 가슴에 담아둔 그 시퍼런 멍자국을 영화라는 기록으로 남겨서, 잊지 않고 잊히지 않게 보듬어 드려야 한다는 어떤 사명의식 같은 거였지요.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개봉하는 〈광대: 소리꾼 감독판〉은 오랜 꿈, 제 마음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있던 그 꿈이 ‘아’하는 소리처럼 우러난 거라 생각해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결국,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란 건. 대부분 오랜 시간 꿈으로 간직하던…, 그런 거 있잖아요”

〈광대〉에는 이전 버전에는 없는 ‘북한에서 촬영한 장면’이 가득 담겼다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학규와 벗들이 간난이를 찾아 조선 팔도를 떠돌았기에 북한 관련 장면을 꼭 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추진했지만, 지난해 개봉한 〈소리꾼〉에서는 담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넣고 싶은 장면들, 꼭 넣어야 할 이야기를 마음껏 담아 넣었다고 한다.

“영화도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 조선 팔도를 떠도는 이야기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강원도와 충청도의 산하만 담으면 관객에게 너무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이번 감독판에서는 북한에서 촬영한 그런 장면들을 마음껏 담았습니다. 〈광대〉는 판소리 영화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가족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조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이 영화는 ‘가족의 복원’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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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사는 우리는 크든 작든 가족이나 이웃, 친구들과 단절된 시간을 살아내야 하고 그래서 영화 속에 그런 따뜻한 이야기도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 가족과 함께 꼭 보 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조정래의 문장을 조정래 앞에 놓아두며

조 감독의 〈소리꾼〉은 이미 스페인과 아랍에미레이트, 일본 등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지난 3월 아마존 프라임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제 미국과 영국의 사람들도 ‘한국의 영화, 우리의 소리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BTS가 빌보드에서 K팝의 비전을, 영화 〈미나리〉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빛을 발했다면, 이제 “세상을 웃게 한 이야기, 세상을 울린 소리”가 담긴 영화 〈광대: 소리꾼 감독판〉은 한국의 정서를 세계 속에 전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문득 머리에 맴도는 문장 하나가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말이다. 최선 그 이상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아름다운 영화 ‘광대의 조정래 감독’에게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이제 하늘이 도운 영화, <광대>가 전국의 개봉관에서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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