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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밀리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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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밀리가 떴다 

글 왕영옥 작가  일러스트 한우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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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 뽀미, 산책가자!”

아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는 현관으로 달려가서 문을 올려다보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으니 기다려보라던 한 살 더 먹은 콩이 오빠 말이 맞았다. 늦게 일어났는데도 여유를 누리는 엄마를 보면서 주말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나도 바깥나들이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었던 터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가족 외출이 비라도 내려 무산될까 봐 조바심을 내며 얼마나 많이 창밖을 쳐다보았던가. 

“야호! 드디어 나들이다!”

외출 한 번 하려면 준비 시간이 너무 길어서 속이 상할 때가 있다. 오늘은 바깥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고 작년에 입던 조끼를 찾느라고 한바탕 야단법석이 났다. 우리가 감기 걸릴까 걱정이 되어서다. 엄마 아빠가 모자를 눌러쓰고 입고 있던 옷에 외투만 걸친 모습이 가까운 곳으로 갈 모양이다. 

빨리 나가자고 워낙 보채대니까 아빠가 서둘러 우리에게 조끼를 입히고 목걸이 줄을 하는 동안 엄마는 간식과 배변 봉투를 챙긴다. 아파트 입구 단풍나무가 심어진 화단 앞을 지나가면 이상하게 늘 대변이 마렵다. 나갈 때 못하면 돌아올 때라도 매번 같은 자리에서 꼭 거사를 치르게 된다. 시원하게 만들어낸 내 유일한 생산품이기도 한 배설물 때문에 항상 배변 봉투를 가져가는 것 같다. 우리 남매는 산책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바람과 공기, 코를 간지럽히는 가지 각색의 세상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발바닥에 닿는 다양한 감촉이 신기하다. 

산책 노선을 바꾸어 새로운 곳을 다녀오기라도 하는 날은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가뿐해지는 것이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풀리는 것 같다. 간식도 밖에서 먹으면 더 맛있다. 무엇보다 쉬는 날의 휴식을 포기하고 우리와 속도를 맞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는 엄마 아빠의 끈끈한 사랑에서 느껴지는 그 행복감이 좋다. 

이번 산책길에는 제발 진상을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마음을 살펴보지도 않고 보호자 허락도 없이 먹을 것을 주려 하거나, 갑자기 다가와서 만지려 할 때는 무척 황당하다. 

귀엽다고 소리 지르면서 오두방정을 떠는 것도 정말 못 봐주겠다. 모든 낯선 것의 접촉은 심장이 콩닥거릴 만큼 두렵기만 하다. 보통은 주인 뒤에 숨거나 도망을 치는데 심할 경우는 다가오지 말라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크게 짖게 된다. 상식 없는 사람들 때문에 우아하고 도도하게 굴다가 갑자기 겁쟁이로 변해서 격 떨어지게 인상을 긁으며 악을 쓰고 짖어대고 싶지 않다. 

비록 체구는 작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고, 이래 봬도 누구보다 당당하고 용감한 여장부 인데 말이다. 가족들에게는 하염없이 착하고 애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에티켓 없는 낯선 사람에게는 번번이 경계심을 가지고 공격을 할 정도로 까칠하게 변하게 된다. 작다고 얕보거나 함부로 만지면 심지어 그냥 물어버릴까 갈등할 때도 있다.

나만큼 멋진 외모를 가진 미니핀이 있으면 나와 보라지. 엄마는 초롱초롱 빛나는 동그란 눈이 사랑스럽다고 하고 아빠는 반짝반짝 윤기 나는 까맣고 작은 코가 예쁘다고 한다. 

새끼사슴을 연상시키는 가냘프고 늘씬한 몸매에 매끈한 피부, 호리호리한 다리는 내가 봐도 우아하다. 솔직히 말해 품위 있고 민첩한 모습에 관심을 보이고 부러워하는 친구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렇다고 매너 없이 덥석 만지는 것은 정말 싫다. 가족이 쓰다듬거나 스킨십 주는 것은 당연히 좋다. 부드럽게 만져 줄 때는 혀로 따뜻하게 핥아주는 것 같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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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의 손이 다가오면 우리를 해칠까 두렵고 긴장이 되고 불안하다. 특히 머리를 만지는 것은 주인에게만 허용하고 싶다. 정 만져보고 예뻐해 주고 싶으면 우리의 기분을 살피면서 천천히 다가와서 등이나 몸쪽으로 살짝 쓰다듬어 주는 것까지는 참아 주겠다. 

아쉽겠지만 눈으로만 보시고 우리에게도 행복한 산책권을 보장해 달라.

산책할 때 나는 무조건 앞으로 가는 돌격형 미니핀이고 콩이 오빠는 탐색형 푸들이다. 오빠는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다른 친구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람도 거리감 없이 반가워한다. 지나가다가 낯선 또래를 보면 뒤쫓아가서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새 친구에게 관심을 확실히 표시하고 탐색하는 것을 즐긴다. 온 동네 아이들이 영역표시를 해 놓은 곳도 그냥 못 지나친다. 배변 냄새를 통해 우리 동네 어떤 친구가 사는지 건강상태나 나이까지 알아낸다. 오빠는 뽀미가 쉬했던 위에다 꼭 다시 영역표시를 하는 데 그럴 때는 정말 얄밉다.

오늘처럼 몇 배나 크고 괴물 같은 불도그를 향해 겁도 없이 목청을 세우는 날은 우리 가족 모두 비상경계태세가 된다.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불도그가 지나가자 오빠랑 같이 걷던 엄마가 먼저 긴장하고 리드 줄을 세게 잡아당긴 모양이다. 

빠도 덩달아 불안했는지 자신이 다쳐도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랬는지 평소보다 심하게 상대에게 덤벼들며 짖어댔다. 양쪽 주인 모두 적극적으로 끌어 당기며 말리기도 했지만, 어찌나 요란하고 기세가 당당한지. 상대는 덩치가 조그만 놈이 시끄럽게 구는 것이 어이없고 귀찮다는 듯이 그냥 피해버려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깐이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두 번도 아니고 오빠는 도대체 왜 자기보다 덩치가 큰 상대만 보면 마구 짖어대는 걸까? 하긴 나도 엄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오빠 주변에는 재밌는 친구들이 많다. 모두 산책길에 오가며 만난 친구들이다. 우리는 가본 적도 없는 유치원을 다니는 라온, 생일 때마다 맛있는 케이크를 받는다는 카레, 애견 카페에서 항상 인기를 독차지하는 제나 등등. 신기하고 믿기지 않은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와 함께 그 아이들의 소식을 오빠를 통해 모두 듣게 된다. 고집이 세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나름 영리하고 자신감 있는 오빠가 우리 식구여서 다행이다. 

3년 전 엄마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우리 가족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어서 지난해 엄마의 결혼으로 아빠가 생기면서 우리는 완벽한 가족을 이루었다. 

아빠는 어려서부터 애견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자나 깨나 우리를 보고 싶어한다. 잘 놀아주고 산책도 많이 한다. 아빠가 쓰레기를 버리거나 분리수거 하려고 마스크를 쓰면 당연히 함께 갈 줄 알고 빨리 안아 달라고 난리를 부리게 된다. 

우리가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무조건 좋아한다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산책을 시켜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 잘 따른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아빠 후보로 처음으로 만났을 때 우리 남매는 그를 공동의 적으로 여기고 엄마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짖어대고 덤벼들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다. 두 분의 결혼을 망쳤다면 큰일 날 뻔했다. 아빠가 침착하고 차분하게 우리를 다독이고 친해질 때까지 참아 내서 엄마 같은 미인과 결혼했으니 한 가족이 된 것이다. 

두 분은 부재중에 우리가 외로웠을까 봐 같이 놀아주려고 애쓰고 우리는 두 분의 분위기를 살피며 재롱을 떨고 애교를 부리며 기쁘게 해주려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은 엄마만 피부가 하얗고 그녀가 좋아하는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피부가 까맣다. 

산책길에서 돌아올 때 가끔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집 앞에서 안 들어가겠다고 딴청을 피우거나 떼를 쓰며 버텨 보기도 하지만 결국 거역하지는 못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산책 자주 시키지 못해 늘 미안하게 생각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맞벌이하는 두 분의 피곤의 무게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에 나갔다 오면 바로 씻어야 한다, 오늘은 낙엽 위에서 맘껏 뒹굴고 놀았으니 목욕하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잘 참아야겠다. 엄마 아빠가 기분이 좋으면 우리도 덩달아 즐겁다, 우리가 만족스러우면 두 분도 흐뭇할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나른한 몸을 기대며 포근히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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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영옥 작가는 20대에 금융계에 재직했고 40대에는 10여 년 간 학원을 운영했다. 뒤늦게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상상마을》(신문) 편집장을 지내면서 글쓰기에 입문한 후 2016년 수다쟁이 다락방 회원 공동수필집 《엄마의 손가락》 출간에 이어 2018년 무크지 《원미동 부르스》 제작에 참여했다. 반려동물의 이야기를 다룬 수필과 생활수필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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